英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작 '고래' 천명관 작가 북토크
"세상은 폭력적…여성 등장인물 강렬하고 능동적"
"여성 폭력 관련 민감성에 기계적 잣대도 있는 듯…고민해볼 부분"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작인 '고래'의 천명관 작가는 한국 사회의 빠른 변화를 관통한 것은 작가로서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천 작가는 19일(현지시간) 주영한국문화원 북토크에서 '고래'를 쓸 때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냐는 질문에 "나로서도 미스터리"라며 "이미지 몇 개만으로 시작했는데, 상상력이 마구 뻗어 나갔다"고 답했다.
그는 "난 농촌의 초가집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전기가 없어서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었다"며 "부모님이 책만 좋아한다고 걱정할 정도로 굴러다니는 삼류 잡지부터 도서관 문학전집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고, 영화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는 "읽고 겪은 모든 것이 축적돼있던 것 같다"며 "난 다양한 형태의 사회를 경험하면서도 문화를 향유한 세대였다. 한국 사회의 빠른 변화를 관통한 것은 작가로서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고래'는 산골 소녀인 금복의 성공과 몰락을 중심으로 국밥집 노파, 금복의 딸 춘희의 기구한 삶이 얽혀있다.
천 작가는 "첫 장에 전체 이야기가 압축돼 있다. 그 부분을 쓸 때 이미 다 결정돼 있었다. 치밀하게 구상한 게 아니라 약간 본능적인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천 작가는 "거대한 것이 사라지는 게 슬프게 느껴져서 그런 시대를 담았다. 큰 것이 하나의 테마가 됐다"며 "사회생활을 하며 보니 세계가 다 너무 작고 보잘것없고 미천했다. 큰 것들은 현대사회에 필요 없고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 서커스단이 마을을 지나갔는데 처음 본 코끼리가 정말 커서 놀랐고 몸에 상처가 많아서 충격받았으며, 그 이미지에 강렬하게 사로잡혔다"고 했다.
천 작가는 작품 속 여성 대상 폭력성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는 "이 책엔 거친 이야기가 많은데, 우선 배경이 전근대적이고, 원시 상태에 가깝고, 마치 국가도 법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세상이란 걸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가 존재하는 건 나중에 교도소가 등장할 때인데 그마저도 매우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주인공들을 가해한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특별히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생각은 안 해 봤고, 그냥 세상은 이렇게 폭력적이라고 본다"며 "현대 사회는 이를 컨트롤하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 않은 것을 많이 목격하며, 세상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에 민감할 수 있는 독자들을 고려해 다시 쓸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근대적인 폭력성이 드러나는 것을 수정하면 좀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여성들의 이야기고, 여성들 캐릭터가 강렬하고 굉장히 에너지가 있으며, 능동적"이라며 "오히려 남자들은 약간 좀 바보 같고 어리석고 스스로 몰락해가는 존재들이고 수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조금 모르겠다. 그런 민감한 부분에 약간 기계적인 잣대도 있는 것 같다"며 "그런 것들에 관해선 명확하게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좀 고민해볼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이기도 한 천 작가는 소설과 영화의 차이에 관해선 "가장 큰 것은 돈 문제"라며 "내 영화는 약 100억원이 들어갔는데, 이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영화는 2시간이란 형식을 엄격히 지켜야 하니 정말 답답했다"고 덧붙였다.
영상화에 관해선 "분량과 비용 때문에 긴 드라마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며 "각본 연출 제안을 받았지만, 소설을 쓰며 창작의 즐거움을 모두 맛봤기 때문에 재미없는 노동이 될 것 같아 거절했다"고 말했다,
'고래'의 김지영 번역가는 이날 "번역할 때 저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려고 한다"며 "자기 의견을 너무 많이 넣지 않도록 애쓴다"고 말했다.
그는 "통상 작가에게 이메일로 의미 등을 물어보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했다"며 "런던에 와서 찬 작가를 처음 만났다"고 소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영국 유명 서점인 포일스 등의 관계자를 포함해 약 80명이 참석했다.
주영한국문화원 관계자는 "서점에 '고래'가 품절돼 주문 후 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영국 독자들이 한국 도서가 더 많이 번역되길 기대한다는 반응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은 23일 런던 스카이가든에서 개최되는 행사에서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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