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원폭 피해자 10명 참배 지켜봐…尹대통령, 피해자들에게 인사
대통령실 "아픈 과거 직시·치유 함께 노력 의미"…한국 대통령으로도 첫 참배
(도쿄·히로시마=연합뉴스) 김호준 박상현 박성진 특파원 이동환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오전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했다.
한일 양국 정상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기시다 총리와 유코 여사는 이날 오전 7시 35분께 위령비를 찾아 일렬로 서서 백합 꽃다발을 헌화하고 허리를 숙여 약 10초간 묵념하며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추도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에도 한 차례 더 목례했고, 원폭 피해자들에게도 인사했다.
박남주(90) 전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권준오(73) 현 한국원폭피해특위 위원장 등 10명의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뒤에 앉아 참배를 지켜봤다.
박 전 위원장은 피폭 당사자, 권 위원장은 피폭자 2세다.
참배 이후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의 안내를 받으며 차량에 탑승했다.
양국 정상은 굳은 표정으로 참배에 임했으며, 취재진에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참배를 지켜본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정상의 위령비 참배에 감사와 함께 기대를 표시했다고 현지 방송 NHK가 보도했다.
박 전 위원장은 "감사와 감격한 마음뿐이다. (90살까지) 오래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한국과 일본은 더욱 친밀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한일 정상·부인들 4명이 우리 위령비에 참배한 것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이정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 내에서는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지만 윤 대통령은 핵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도운 대변인은 히로시마 한 호텔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통해 "두 정상이 한일 관계의 가슴 아픈 과거를 직시하고 치유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특히 두 정상의 참배에 우리 동포 희생자들이 함께 자리한 것이 그 의미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동북아,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핵 위협에 두 정상, 두 나라가 공동으로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참배에는 박진 외교부 장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윤덕민 주일본 한국대사, 김태효 안보실 1차장, 김은혜 홍보수석, 최상목 경제수석, 이충면 외교비서관, 특별 수행원인 국민의힘 김석기·신지호 전 의원 등이 함께했다.
일본 측에선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 기하라 세이지 관방부 장관,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 아라이 마사요시 총리비서관, 야마다 시게오 외무심의관, 후나코시 다케히로 아시아대양주국장, 오노 겐 북동아1과장 등이 자리했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 투하로 목숨을 잃은 한국인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시설이다.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했을 당시 한국인 약 5만 명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한 한국인 사망자를 3만 명으로 추산한 바 있으며, 위령비에는 사망자가 2만 명으로 기록돼 있다.
한국 대통령은 지금까지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한 적이 없었다. 일본 총리 중에는 오부치 게이조(1937∼2000)가 1999년에 참배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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