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교양 웹툰 서비스 선보인 이성업 노틸러스 대표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선생님이나 부모님 눈을 피해 몰래 만화를 봐야 했던 때가 있었다. 만화가 공부에 방해되는 유해물 취급을 당하던 시절 얘기다.
그랬던 만화가 언제부턴가 지식을 재밌게 전달하고 습득할 수 있는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과학이나 역사 등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학습만화 전성시대가 열린 배경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유통되는 만화를 웹툰이라고 한다. 2000년대 들어 포털 사이트를 통해 인기를 끌기 시작한 웹툰은 이제 한국의 문화와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K-콘텐츠로 성장했다. 그런 만큼 시장 내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나 지식·교양 분야에 특화한 웹툰은 아직 경쟁이 덜한 블루오션 시장으로 꼽힌다.
2021년 7월 설립된 노틸러스는 웹툰 서비스 '이만배'(이걸! 만화로 배워!?)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회사명은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과학소설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잠수함 이름에서 따왔다.
작년 8월 작품 공개를 시작한 이만배는 국내 웹툰 분야에서 지식·교양 중심의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내놓아 주목받고 있다.
서비스 개시 9개월 만에 가입 회원이 6만 명을 넘어서고, 로그인해 유·무료 작품을 보는 독자 기준으론 매월 20%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 16일 이성업(46) 노틸러스 대표를 만나 창업 얘기를 들었다.
◇ 레진코믹스 매각 후 재창업
노틸러스는 이 대표의 두 번째 창업이다.
이 대표가 걸어온 길은 변화무쌍하다고 할 만하다. 고교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뉴욕 소재 사립 예술대학인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다가 순수미술로 전공을 바꿨다.
그러나 느닷없이 닥친 한국의 외환 위기와 병역 문제가 겹친 탓에 유학 생활을 중도에 접었다. 귀국해서는 한동대에 편입해 시각·산업·영상 디자인을 배웠다.
학부 과정을 마치고 디자인 업체에서 웹사이트 기획 일을 하다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 네이버에 들어가 6년간 일한 그가 만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13년 종합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의 창립 멤버로 합류하면서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웹툰뿐만 아니라 웹소설, 웹드라마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던 와중에 작가들과의 분쟁 등으로 경영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어려운 시기이던 2018년 레진엔터테인먼트의 새 선장을 맡은 것이 이 대표였다.
그는 취임 후 전체 팀원이 잠수함에 함께 탄 공동운명체임을 강조하는 경영으로 조직을 둘러싼 분란을 털어내고 턴어라운드를 이끌었다.
2021년 레진엔터테인먼트가 키다리스튜디오에 매각되고서 새 일을 찾아 나선 이 대표가 갈 길은 명약관화했다.
"어릴 적부터 정말로 만화를 좋아했는데, 처음에 빠진 것이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가 아닌 과학학습 만화였어요. 내가 좋아하는 걸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만화 즐기면서 지식·교양 쌓는다
이렇게 출범한 노틸러스의 지식·교양 웹툰 플랫폼 이만배가 추구하는 가치는 '즐겁고 재미가 있는 배움'이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공부 재미를 처음 알았어요. 교수님은 언제나 토론을 유도하는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아직도 그때 즐겁게 공부했던 추억이 꿈에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한국에서 경험한 공부는 괴로웠고 선택권은 없었죠. 선생님은 언제나 정답을 알려주고 우린 그걸 암기하는 수동적 공부였던 겁니다."
이 대표는 어른 세대가 되어 수동적인 교육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확신하게 됐다며 모든 세대가 즐겁게 능동적으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매체로 이만배를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만배가 지금까지 선보인 웹툰 작품은 과학, 역사, 군사(밀리터리), 신화,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대부분은 연재 형식으로 독자들과 만난다.
이 대표는 약 120명의 글·그림 작가가 함께 하고 있다며 매주 1~2편씩 꾸준하게 새로운 주제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작품 주제로는 작가들이 원하는 내용을 우선으로 선정한다.
이 대표는 "이만배에서 처음 공개돼 히트한 대표작이 <일리아스:트로이의 노래>"라며 신화, 역사, 인문학 등 먹고 사는 것과 무관한 지식을 다루는 작품의 인기가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만배는 학습만화를 지향하지만, 타깃으로 삼는 주된 독자층은 20대라고 한다.
지식을 얻고 교양을 쌓는 것에 대한 욕구가 가장 강한 연령대라는 이유에서다.
이 대표는 좋은 작품이 나오면 SNS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바이럴(입소문)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며 20대가 가장 먼저 보고 30대, 40대를 거쳐 자녀 세대로 독자층이 넓어지는 흐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지식·교양 웹툰 시장의 미래를 낙관했다.
"재미있잖아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큰일 나요."
◇ 학습 만화로 베트남 시장 진출
이만배는 일반 웹툰 앱과 경쟁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앱의 만화 카테고리에선 7위까지 올랐지만 지식·교양 웹툰으로 좁히면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기술 기반으로 선두를 유지하기 위한 준비를 지난 1년 동안 해왔고, 본격적으로 차별화 전략을 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또 이미 확보한 콘텐츠 대부분이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경쟁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노틸러스는 이만배 브랜드로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는 등 해외 시장 공략에도 시동을 걸었다.
베트남 현지 출판사와의 협업을 통해 이르면 올 8월부터 웹툰이 아닌 서적 형식의 과학학습 만화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대표는 한국의 뛰어난 학습만화 기획력과 베트남의 최고 인기 캐릭터(주키즈) 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베트남 진출을 시작으로 동남아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으로도 사업을 확장할 생각이라고 했다.
◇ "웹툰을 고부가가치 라이선싱 산업으로"
이 대표에 따르면 현재 팀원 15명이 뛰는 노틸러스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 김창원 타파스미디어 대표, 김민철 야나두 대표 등 다수의 유력 에인절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카카오벤처스 같은 전문 투자업체로부터 지금까지 총 45억원의 자금을 받았다.
사업 기반을 다지기 위해 시리즈A 단계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이라는 이 대표의 꿈은 한국 웹툰을 고부가가치 라이선싱(지식재산 사용을 허가하고 사용료 받는 것) 산업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한다.
"해외에서 한국 웹툰 인기는 일본 망가(만화)에 뒤지지 않죠. 그런데 작년 10월 열린 뉴욕 코믹콘(New York Comic Con)을 다녀온 뒤 우리 웹툰 시장의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95년 완결된 드래곤볼이 행사장 입구를 장식했는데, 아직도 드래곤볼은 라이선싱 계약으로 매년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해요. 하지만 우리 웹툰은 완결되면 잊힙니다."
이 대표는 "한국 만화 콘텐츠 가운데 그나마 라이선싱이 크게 성장한 영역이 학습만화"라며 이만배를 앞세워 한국 웹툰을 라이선싱 산업으로 만드는 디딤돌을 놓겠다고 말했다.
parks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