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드론·AI까지…첨단 신기술 접목한 군사장비 봇물
美국방부 조달 조건은 깐깐…기술 등 따라 명암 엇갈려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어두운 밤이나 짙은 구름을 틈타 몰래 이동하는 적군의 움직임을 낱낱이 포착해내는 '가성비' 인공위성 함대.
인명피해 위험 없이 상대방의 무인 항공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최신형 드론, 러시아군의 방대한 무선 통신 내역을 훑어 목표물을 파악하는 인공지능(AI) 기술까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군수물자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기업문화와 신기술로 무장한 방산 스타트업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이번 전쟁은 각종 첨단기술의 '테스트베드'(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제공한 '스타링크' 인공위성 인터넷 서비스는 우크라이나군 최전방 부대의 신속한 소통 및 의사결정 과정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는 폭격기로 개조한 상업용 드론을 전장에 투입, 상당한 효과를 거둬 주목받기도 했다.
해병대 장교 출신인 미 국방대의 토머스 헤임스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진정한 군사 혁명"이라며 "1차 세계대전때 도보로 걷던 병사들이 2차 대전에선 기계화보병으로 발전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혁명"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내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전쟁터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군사·무기 기술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타주(州)에 위치한 스타트업 포르템은 수㎞ 밖에서 무인기가 날아오는 것이 감지되면 즉각 발진해 수백미터 상공에서 그물로 포획하는 신형 드론을 개발 중이다. 러시아가 즐겨 쓰는 이란제 드론의 이름을 따 '샤헤드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타트업 프라이머는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GPS 등 위치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상대방 부대 혹은 장비의 위치를 포착한다.
빅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팔란티르'는 널리 알려진 성공사례 중 하나다. 미 중앙정보부(CIA)에게서 초기 투자를 받은 이 업체는 디지털 정보를 토대로 적군의 목표물을 식별해낸다.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에도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스타트업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미 국방부 사업예산을 따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스타트업은 기존 거대 방산업체와 비교해 보다 유연하고, 저렴하고, 신속한 옵션을 제공하는 반면 대규모 계약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다.
작년 12월 오스틴 로이드 미 국방장관은 스타트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이런 종류의 변화는 늘 생각만큼 원활하거나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는다"고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각종 위험요소를 피하기 위해 신중하고 지난한 의사결정을 거치는 정부 관료제의 높은 문턱을 가리켜 '죽음의 계곡'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부는 계약 체결을 기다리다 자금난으로 직원들을 해고하는 경우도 있다.
지구관측 위성업체인 카펠라 스페이스의 파얌 바나자데 최고경영자(CEO)는 "펜타곤(국방부) 구매 담당자들은 규정을 벗어나지 않고자 '안 된다'고 말하는 훈련을 받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미 국방부의 조달 담당인 윌리엄 라플란테 차관은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기계장치가 무엇이든지 간에, 전쟁의 관건은 진짜 중요한 무기를 강도 높게 생산해내는 것"이라며 "실리콘밸리는 공을 인정받고 싶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여전히 소총과 대포, 곡사포 등 20세기에 널리 쓰인 재래식 무기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다만 하이디 슈 미 국방부 연구공학차관은 "이러한 군수물자 획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는 '죽음의 계곡'을 잇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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