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방화·폭력 동원해 거주민 내쫓아"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정부는 왜 아랍인들에게 사냥 허가를 주기 위해 우리를 집에서 쫓아내는가?"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 인근 올로로소콴 마을에 살았다가 약 1년 전부터 국경 넘어 케냐에 살고 있는 K씨는 이렇게 말하며 울분을 터트렸다.
K씨는 지난해 6월 10일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폭력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먼 거리에서 들리는 비명에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회관으로 갔다가 경찰, 군 공원 경비대원 200여명과 마을 주민 500여명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K는 정부 측이 주민들을 밀어내려고 하는 순간 총성이 들렸다고 떠올렸다. 주민들은 나무로 된 활을 쏘면서 맞섰다. 그러다가 한 경찰이 화살에 맞아 숨지자 정부 측은 주민들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정부의 보복이 두려워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K씨는 "그들은 총알을 뿌려댔다"고 말했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탄자니아 관광부가 올로로소콴 주변 1천500㎢를 사냥관리구역(game-controlled area)에서 사냥금지구역(game reserve)으로 전환하려고 하면서 이러한 충돌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두 구역 모두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취지로 설정되지만, 사냥관리구역은 주민의 농사와 가축 사육을 허용하는 반면, 사냥금지구역은 야생동물 서식지와 사파리 관광지로 이용되며 허가받은 경우에 한해 사냥을 할 수 있다.
유엔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생동물 사파리 관광지인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 자연보호구역과 올로로소콴을 포함하는 롤리온도 지역에서 8만2천여명의 마사이족이 쫓겨날 위기에 놓였다고 밝혔다. K씨도 마사이족이다.
마사이족은 이 지역에서 양, 염소, 닭, 소 등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 가축은 야생동물들과 같은 풀을 먹고 자라는데, 탄자니아 정부는 자연보호를 위해 이 지역을 사냥금지구역으로 바꾸려는 것이며 강제 퇴거 조치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과 유럽연합(EU),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과 현지인들은 탄자니아 정부가 올로로소콴 거주민들을 내쫓고 이 지역을 아랍에미리트(UAE) 왕족을 위한 사냥터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한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와 유럽 의회 관계자들은 탄자니아 정부가 마사이족을 이 지역에서 몰아내기 위해 마사이족의 거처를 불태우고 가축을 압류하며, 구타와 고문까지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갈등은 탄자니아 정부가 OBC라는 관광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했다. 유엔에 따르면 OBC는 UAE의 왕족을 위한 사냥 여행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1992년 응고롱고로 지역 위원회는 모하메드 압둘라힘 알 알리라는 남성에게 올로로소콴을 포함하는 지역에서 사냥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계약을 체결했다. 알 알리는 현재 UAE 부동산 개발업체인 알알리그룹의 회장이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검토한 서한에 따르면, 이 계약이 체결됐을 때 탄자니아 관광장관은 알 알리에게 "법적으로 개인에게는 사냥 면허를 제공할 수 없으니 사냥 면허를 관리하는 회사를 세우라"고 조언했다.
그 후 탄자니아에서는 사냥 면허를 둘러싼 정부 고위 지도자들의 부정부패로 알 알리와 OBC가 이득을 봤다는 보고가 나왔다. 탄자니아의 한 탐사 기자는 당시 탄자니아 집권당이 두바이 왕실로부터 수백만달러의 기부를 받은 것을 시사하는 문서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1996년 OBC가 올로로소콴에 사파리 캠프를 건설한 이후 수년간은 OBC와 지역 거주민들이 다소 평화롭게 공존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탄자니아 정부가 2009년 3월 이 지역을 사냥금지구역으로 전환하기 위한 퇴거 계획을 시행하면서 마사이족의 악몽이 시작했다. UNHRC과 다수의 NGO들은 그해 7월부터 마을이 불에 타고 강간과 구타가 보고됐다고 전했다.
국제 사회의 비난이 잇따르고 있지만, 마사이족의 강제 이주는 계속되고 있다. 2017년 유엔의 조사에 따르면, OBC와 탄자니아 정부가 이주시킨 마사이족의 수는 2만여명에 달한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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