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공동성명 "안보협력 강화…외교장관 전략대화 신설"
전문가 "韓의 러 규탄동참, EU에 협력 필요성 납득시켜"…남중국해도 언급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한국-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전통적인 통상 협력 관계를 넘어 안보 협력 강화에 합의한 것은 복잡해진 국제 정세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브뤼셀자유대학 한국학 석좌교수는 23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최근 몇 년 새 중국의 더욱 공세적인 태도, 미·중 경쟁 심화 등은 EU와 한국 모두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번 회담 결과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은 전날 서울에서 열린 한-EU 정상회담에서 '한·EU 외교장관 전략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고 공동성명을 통해 밝혔다.
한-EU 정상회담 계기 공동성명이 채택된 건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경제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EU 특성상 통상 분야에 중점을 뒀던 역대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 회담에서는 전략대화 신설을 포함한 안보 분야가 중점적으로 다뤄진 게 특징이다.
파르도 교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기의 영향이 한국과 유럽이 안보 문제를 대하는 데에 여전히 영향을 끼친다"며 "한국이나 EU로선 스스로의 안보 강화를 위해 협력해야 할 다른 파트너를 모색해야 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방위비 분담금 등으로 한국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속한 유럽 국가들과 다수 마찰을 빚던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실제 미·중 갈등과 대만해협을 둘러싼 위기 고조에 따른 한국, EU 양측의 우려는 이번 공동성명에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공동성명에는 '남중국해를 포함한 지역의 상공비행과 항행의 자유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다. 우리는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도-태평양에서의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어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규칙에 기반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며, 동 지역이 포용성, 법치, 기본적 자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을 향한 우회적 메시지로 읽힌다. 직전인 2015년 한-EU 공동성명에는 없던 내용이기도 하다.
파르도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한국의 단호한 대응은 더 많은 유럽인에게 한국과 협력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셸 상임의장이 전날 공동 언론발표에서 "우크라이나의 대대적 침공이 일어나는 지금 시점에서 심도 있는 한·EU 협력은 사치가 아니라 정말 우리에게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됐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밖에 공동성명에 '우리는 우리의 공통의 목표를 증진하는 데 있어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것도 한-EU 양자 관계를 고려할 때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짚었다.
최근 인도태평양 지역과 접점 확대를 모색하는 EU와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힌 한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물로 해석된다.
파르도 교수는 신설된 외교장관 전략대화 계기 광범위한 협력이 모색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전략대화 계기 우크라이나전이나 중국-대만 문제와 같은 전통적 안보 이슈뿐 아니라 공급망 회복력이나 AI, 6G, 차세대 반도체와 같은 신기술 등 다양한 경제안보 현안에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파르도 교수는 유럽 내 유일한 한국학 석좌로, 킹스칼리지런던 국제관계학 교수도 겸임하고 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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