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4분기 사이 선박자동식별시스템 작동 끈 화물선 급증
친러 접경국들 '묵인'…"카스피해, 제재 회피·무기 제공 통로"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동의 이란과 러시아를 잇는 카스피해가 이란제 무기 공급의 핵심 길목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위치 추적과 정보 노출을 피하기 위해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을 끄고 '어둠의 항해'를 하는 양국 화물선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해상 정보회사인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카스피해를 통과한 이란·러시아 화물선 가운데 AIS가 꺼진 경우는 1천621건으로 직전 3분기 777건보다 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 수치는 계속 늘어 올해 1분기엔 2천24건을 기록했다.
국제해사기구의 결의에 따라 대부분의 선박은 해상 안전과 보안을 위해서 AIS를 통해 위치 및 식별 정보를 항만 당국이나 다른 선박들에 제공해야 한다.
CNN은 "데이터에 따르면 AIS가 꺼진 사례가 지난해 9월 급증했는데, 이는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가 작년 여름 러시아가 이란에서 드론을 구입했다고 밝힌 직후"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필요한 이란제 무인기(드론)나 총알, 박격포탄 등을 카스피해를 통해 공급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카스피해 접경국인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모두 구소련 연방국인 점도 이러한 무기 거래가 유지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보안회사 'EOS 리스크 그룹'의 수석 정보 분석가인 마틴 켈리는 "카스피해 접경국들은 이런 종류의 교류를 차단할 능력이나 동기가 없다"며 "이 무기 거래가 반대 없이 진행되기에 완벽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이러한 위장용 AIS 꺼짐은 주로 이란의 아미라바드와 안잘리 항구, 러시아의 볼가강과 아스트라한 항구 근처에서 발생했다.
CNN은 해상정보 웹사이트인 마린트래픽의 데이터를 이용해 전문가들이 무기 거래와 관련 있을 것으로 의심한 러시아 화물선 6척과 이란 화물선 2척을 직접 추적했다.
CNN은 그 결과 몇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며 "일부 화물선은 공식 기항 없이 이란 항구에서 러시아 아스트라한 항구로 이동했고, 또 다른 화물선들은 이란의 아미라바드 항구와 러시아 아스트라한 항구에 접근할 때 불을 끄거나 장기간 AIS를 껐다"고 설명했다.
분석가들은 목격자 진술이나 위성 사진이 없는 상황에선 이들 화물선에 무엇이 실려있는지 명확히 알기 어렵지만, 이런 '수상한 행동'들은 이란이 러시아에 드론을 수출했다는 서방 정보기관의 보고를 뒷받침한다고 말한다.
켈리는 "러시아가 이란에 드론을 요청한 것과 카스피해의 은밀한 기항, AIS가 꺼진 사례의 급증은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의 데이터 분석가인 브리짓 디아쿤은 CNN에 "카스피해는 아시아 시장으로 상품이 이동하는 주요 경로이자 합법적인 무역이 많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지만, 제재 대상 선박들의 '핫스폿'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에도 카스피해를 통한 양국의 무기 거래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의 국방 안보 싱크탱크인 RUSI(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의 아니세 바시리 타브리지는 "카스피해는 러시아와 이란의 대결의 장이었지만, 이젠 서방 제재 회피와 무기 제공의 잠재적 통로가 됐다"며 "특히 군사 협력에 있어서 양국이 더 평등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고 분석했다.
s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