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반도체 공급망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는 미국과 중국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양국 상무장관 회담을 했다. 지나 러몬드 미국 상무장관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무역장관 회의 참석차 방미한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을 만났고, 두 사람은 자국 산업을 견제하는 상대측 정책에 서로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중국이 지난 21일 미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제품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며 이 회사 제품 구매를 금지했고, 미국은 동맹국들과 협력해 이에 맞서겠다고 한 상황이다. 미 상무부는 "이번 회담은 소통 경로를 열어두고 양국 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개최됐다"고 설명했다. 중국 상무부도 "양측은 소통 채널을 수립해 경제·무역 관련 우려 사항과 협력 사안에 대해 교류를 유지·강화하는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은 두 나라의 외교 사령탑이 이달 10∼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동한 후 2주 만에 열린 양국 간의 고위급 교류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왕 상무부장 간 회담도 열릴 예정이다. 내달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이 만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미·중이 국익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와중에도 전략적 소통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최근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전후해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진영의 대중국 관계 기조가 단절(디커플링)이 아니라 위험제거(디리스킹) 쪽으로 기류가 바뀌고 있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7일 미 브루킹스연구소 특강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관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에 대해 위험을 낮추기를 원하지만, 관계 단절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우리의 수출 통제는 (중국과의) 군사 균형을 위협할 수 있는 기술에 한정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쟁을 서로 책임 있게 관리하고, 가능한 지점에선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하겠다"라고도 했다. 미·중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로시마 G7 공동성명도 중국에 대해 강력한 견제 입장을 밝히면서도 "우리는 중국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 준비가 돼 있다"면서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역할이나 경제 규모를 고려했을 때 공통의 이익이나 세계적 도전에서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금의 중국은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냉전 시기 소련에 비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 대한 레버리지가 훨씬 크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중국과 긴밀히 얽혀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동맹국들을 대중 견제 전선에 일방적으로 줄 세우기도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을 배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양국 교역규모도 커졌다. 지난해 양국 교역액은 6천906억달러(약 870조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과 중국이 핵심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도 긴장 완화를 위해 서로 교류하는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한미동맹의 강화 속에 대중 관계가 그만큼 껄끄러워졌다. 그런데도 중국과의 고위급 대화 채널은 아직 복원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회담이 열려 최고위급 소통의 물꼬를 텄으나 그 뒤로는 기대와 달리 고위급 대면접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달 22일 양국 외교부 국장 간 협의가 서울에서 있었을 뿐이다. 더욱이 최근 중국에서 며칠째 네이버 접속이 안 되고 케이팝 스타의 중국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돌연 취소되는 등 한중관계에 이상기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사드 갈등 때 시작된 한한령(한류 제한령)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한중 간에 조만간 소통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당국자들의 언급이 있었다. 23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포럼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은 중국 외교부장과 대면 협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기회가 있는 대로 이른 시일 내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고 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한 언론에 출연해 "중국과 한국 양자 간 전략 대화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계획이 오가고 있다"고 밝혔다. 대중 관계에서 오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오해와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의 고위급 대화 채널 복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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