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와 정무·국방 대화엔 소극적…경제엔 민관 불문 적극적
시진핑, 안보와 과학기술 자립 강조…'자강' 전략 병행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한국과 미국 등을 상대로 한 중국의 '정랭경온'(정치적으로는 냉랭하고, 경제적으로는 유화적)' 기조가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30일 미중 국방장관 회담 추진과,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방중을 대하는 중국 당국의 태도는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
먼저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이 미중 국방장관 회담을 하자는 미국 제안을 거절했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현재 중·미 양국 군(軍) 대화가 난항을 겪고 있는 원인을 미국 측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의 주권·안보와 이익·우려를 확실히 존중하고, 잘못된 행태를 즉각 바로잡으며, 성의를 보이고, 실제 행동을 해서 중·미 양국 군의 대화와 소통을 위해 필요한 분위기와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기에 리상푸 현 중국 국방부장에게 걸어 놓은 제재를 해제하는 등의 성의를 보여야 미중 국방장관 회담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읽혔다.
반면 같은 날 중국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의 상징으로 통하는 친강 외교부장은 중국을 찾은 머스크 CEO와 만나 중국의 대외 개방 의지를 피력하며 "테슬라를 포함한 각국 기업에 시장화·법치화·국제화한 더 나은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 부장은 거기서 더 나아가 미중 양국이 상호 존중과 평화로운 공존·협력과 윈윈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제때 브레이크를 밟으며, 위험 운전을 피하고, 가속 페달을 잘 밟아서 호혜적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며 미국 정부 관계자에게 해야 할 것 같은 말을 머스크에게 했다.
중국 정부 고위인사의 미국 재계 인사 환대는 최근 자주 보이는 풍경이다.
한정 국가 부주석이 4월 25일 커피 체인 스타벅스의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 전 CEO를 만났고, 왕원타오 상무부장은 3월 27일 애플의 팀 쿡 CEO, 4월 11일 인텔의 패트릭 겔싱어 CEO와 각각 만났다.
아울러 왕 상무부장은 지난 25∼2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 회의를 계기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각각 회담했다.
중국의 태도는 한국에 대해서도 유사하다.
한중관계가 올해 들어 삐걱대는 와중에도 시 주석은 4월 광저우 시찰 때 LG디스플레이[034220] 현지 공장을 방문한 바 있다.
또 최근 한국의 한미 동맹·한미일 안보 공조 강화 흐름 속에 중국 정부는 한국과의 정무 관련 고위급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26일 APEC을 계기로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과 왕원타오 부장 간 회담을 진행하며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강조했다.
결국 중국은 자국 시장에 큰 이해관계가 걸린 외국 기업들을 상대로 유인책을 설파함으로써 기업들이 자국 정부가 대중국 공급망 디커플링(분리)을 포기하도록 설득에 나서 줄 것을 기대하는 모양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부와 기업 간 이해의 불일치, '정경분리' 기조가 만든 틈새 공간을 치고 들어가 전략적 이익을 관철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또 한미의 경제 분야 고위 관료들 상대로는 반도체 등 중국의 사활과 연결되는 특정 분야 정책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디커플링을 견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의 한미일, 특히 미국 행정부의 대중국 견제 기조가 쉽게 변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경제'를 통해 '정치'를 움직이는 '전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중국 지도부는 이 같은 '정랭경온' 전술의 성패와 관계없이 내부를 다지고, '자강' 기조를 견지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 공산당은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강조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글 50편을 묶은 문집을 최근 전국에서 발행했다.
또 30일 시 주석 주재로 열린 중앙 국가안전위원회는 "높은 풍랑과 거칠고 사나운 파도와 같은 중대한 시련을 겪어낼 준비를 해야 한다"며 경제 발전과 안보의 융합을 강조했다.
미국 재계 인사들에게 밝힌 대외개방 기조와 결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중국의 '자강'과 '안보' 강조 기조는 대만해협 상황 등으로 인해 서방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까지 상정하고 대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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