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터미널 입구·인근 해역, 하역 대기 차량·선박 줄이어
러시아는 '과도한 의미부여' 경계…항만 화물 처리능력 시험대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1일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항구 상업 터미널.
러시아 극동 지역 화물 운송 거점인 이곳 상업 터미널은 오전부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터미널 입구로 연결되는 도로에는 안으로 들어가려는 대형 화물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맞은편에서는 싣고 온 컨테이너 수송 작업을 끝낸 빈 화물차 등이 나오고 있었다.
한 시설 보안요원은 "매일 아침·저녁이면 출입구 앞 도로는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화물차들로 가득 찬다"고 말했다.
전날 인근 언덕에 올라 내려다본 상업 터미널 내부도 분주하긴 마찬가지였다.
터미널 내 한 부두에서는 작업 차량이 하역해 놓은 석탄 위로 쉴 새 없이 물을 뿌려대고 있었고,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와 빈 화물차 등이 각 부두로 이어지는 터미널 안 도로를 따라 바쁘게 이동하고 있었다.
한 부두 야적장은 4∼5단씩 쌓아놓은 컨테이너들로 꽉 차 있었다.
상업 터미널 앞으로 펼쳐진 해역에서는 하역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 중인 여러 척의 대형 화물선도 보였다.
길이 3.2㎞인 이곳 상업 터미널 안에는 모두 15개 부두가 있으며, 화물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의 총면적은 23만1천㎡다.
또 선박에 실린 화물을 옮기는 대형 크레인 등 200대 이상의 특수 장비를 갖췄다. 상업 터미널의 연간 화물 처리량은 1천290만t 이상이다.
이처럼 러시아 극동에서 가장 규모가 큰 상업 터미널을 보유한 블라디보스토크항은 이날부터 중국 동북 지역 지린성의 '내륙 화물 교역 중계항'으로도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우크라이나 사태 후 밀착하는 러시아와 중국이 양국 간 경제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달 추가로 발표한 조치에 따른 것이다.
내륙 화물 교역 중계항은 자국 지역 간 교역에 사용하는 항구로, 외국의 항구라 하더라도 자국 내에서 이뤄지는 교역에 대해서는 관세와 수출입 관련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지린성은 1천㎞ 떨어진 다롄 등 랴오닝성에 있는 항구 대신 블라디보스토크항을 통해 식량과 석탄 등을 중국 남방으로 수송할 수 있어 물류비를 대폭 절감하게 됐다.
블라디보스토크항은 지린성 훈춘 국경 검문소에서 200㎞ 정도 떨어져 있다.
양국은 또 이번 조치로 낙후한 중국 동북·러시아 극동 지역 경제성장도 꾀할 수 있게 됐다.
니콜라이 에르모라예프 블라디보스토크항 상업 터미널 전무이사는 "우리는 중국과 오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며 "극동 지역 항구들을 통해 화물 처리량을 늘리려는 중국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현지 매체에 말했다.
다만 러시아 현지에서는 중국 지린성이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자국의 내륙 화물 교역 중계항으로 사용하는 것을 두고 경제 분야 협력 외에 또 다른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실제 블라디보스토크항은 이미 2007년부터 동북 지역 중 지린성 북쪽에 있는 헤이룽장성의 내륙 화물 교역 중계항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지린성이 블라디보스토크항 사용권을 확보했다는 발표 이후 우크라이나 유튜브 채널 등에서는 "중국이 블라디보스토크항을 내륙항으로 선언하고 이 도시를 사실상 중국의 일부로 지정했다"는 '가짜 뉴스'가 유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까닭에 러시아 현지 전문가는 한 매체에 중국이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자국 소유 내륙항이 아닌 내륙 화물 운송을 위한 거점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 둘의 의미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키릴 코트코프 극동연구센터 소장은 "어떤 면에서 이번 상황은 핀란드의 '사이마 운하'와 비슷하다"고 했다.
화물운송 등을 위해 19세기 중반에 건설된 사이마 운하의 전체 길이는 43㎞가량으로, 핀란드 남동부 도시 라펜란타와 러시아 북서부 도시 비보르크를 수로로 연결한다.
코트코프 소장은 "핀란드는 옛 소련 때나 지금이나 사이마 운하 가운데 러시아 영토에 속하는 부분을 임대해 사용한다"며 "매년 핀란드는 러시아에 임대료로 122만 유로(약 17억원)를 지불한다. 즉 러시아는 돈을 벌고 있다. 이번 중국 세관의 결정으로 러시아가 이익을 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방과 중국의 중계 무역으로 홍콩이 부상한 것처럼 블라디보스토크 역시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홍콩'과 같은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내에서는 이번 조치를 두고 블라디보스토크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 후 러시아 내 물류가 동쪽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블라디보스토크항이 추가로 늘어날 운송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러시아 당국도 늘어나는 물류를 감당하기 위해 시설 확장 등 대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항 상업 터미널은 지난 4월 1만3천500㎡가량의 새 컨테이너 부지를 마련해 컨테이너 1천개를 추가로 수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상업 터미널 주변에 이미 도심이 발달한 까닭에 시설 현대화 범위가 향후 제한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밖에 중국에서 들어오는 화물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극동 지역 차량·철도 국경 검문소를 새로 짓거나 현대화하는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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