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국 톈안먼 시위 34주년…통제는 강화하고 기억은 지우기

입력 2023-06-04 17:45   수정 2023-06-05 13:48

[르포] 중국 톈안먼 시위 34주년…통제는 강화하고 기억은 지우기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톈안먼 사태) 34주년을 맞은 4일 중국 수도 베이징은 언뜻 보면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일요일이었다.
낮 최고 기온은 34도까지 올랐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톈안먼 광장의 분위기가 궁금해 이날 오후 광장에서 약 2㎞ 떨어진 둥단역에서 창안제를 따라 자전거로 이동해봤다.
베이징 외신기자들은 사전에 허가받지 않으면 광장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자전거로 둘러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200∼300m마다 무장경찰과 공안이 배치돼 행인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했고, 시민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분증을 제시한 뒤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사복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귀에 꽂은 리시버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다행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중국 당국은 평소에도 외신기자의 톈안먼 광장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그러나 톈안먼 광장 근처에 다다르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도 신분증을 요구했고, 기자도 여권과 함께 기자증을 제시했다.
잠시 뒤 경찰관이 다가와 예약 여부를 확인하더니 외신기자의 경우 예약을 하지 않으면 해당 부서에 확인해야 한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기자는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 시내를 둘러보는 중이라고 둘러댔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해당 부서에 연락하겠다던 경찰관은 기자를 땡볕 아래 세워놓고 한참 동안 아무런 답변도 주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일요일이어서 담당자가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일 뿐 광장에 못 들어가게 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계속 기다릴 것인지 다른 길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하라며 사실상 되돌아갈 것을 종용했다.
지난해 6월 4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광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니, 올해는 휴일 핑계를 댄 셈이다.
내년에는 어떤 핑계를 댈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돌려 출발 지점으로 돌아온 뒤 택시를 타고 톈안먼 광장 주변을 돌아봤다.
외신기자에 대한 광장 진입은 통제했지만, 자국민에 대한 통제는 없어 보였다.
광장 입구에 설치된 보안검색대에는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검색을 강화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검색 순서를 기다리는 긴 줄이 형성됐다.


또 광장 내부에는 평소처럼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깃발을 든 가이드를 선두로 같은 색 모자나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단체로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관광객들은 톈안먼 성루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화창한 날씨를 즐겼다.
얼핏 보면 평범한 휴일이지만, 이날은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던 대학생과 시민들이 중국 당국의 탱크와 장갑차에 유린당한 날이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서 톈안먼 사태는 사실상 사라졌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톈안먼 사건', '6·4 사건', '톈안먼 시위', '6·4 톈안먼' 등 톈안먼 사태와 관련 다양한 검색어를 입력했지만 '관련 결과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나왔다.
또 바이두 '오늘의 역사' 코너에도 미드웨이 해전 발발(1942년), 덩샤오핑 인민해방군 감축 선언(1985년), 미국 최초 안락사 시행(1990년) 등 6월 4일 관련 자료는 검색됐지만 톈안먼 사태는 언급되지 않았다.
톈안먼 사태를 둘러싼 모든 논의를 금기시하면서 '없었던 일' 취급하는 셈이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등 세계 최소 30곳에서 톈안먼 시위 34주년을 기념하는 추모 행사가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시위가 일어난 베이징에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하기만 한 하루였다.
톈안먼 사태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공식 규정은 '정치 풍파'다.
2021년 중국 공산당이 채택한 제3차 역사결의(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의 결의)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이 격변했다"며 "국제사회 반(反) 공산주의·반 사회주의 적대 세력의 지지와 선동으로 인해 국제적인 큰 기류와 국내의 작은 기류는 1989년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기에 우리나라에 엄중한 정치 풍파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의는 시위 진압에 대해 "당과 정부는 인민을 의지해 동란에 선명하게 반대하는 것을 기치로 해서 사회주의 국가 정권과 인민의 근본 이익을 수호했다"고 평가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일 정례 브리핑에서 톈안먼 사태와 관련해 중국 정부가 '학살'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 사과하라는 국제 인권단체의 요구에 "일찌감치 정론(定論·사안에 대한 확정된 입장이나 결론)이 나온 일"이라며 "우리는 이런 조직(인권단체)이 인권 문제를 빌미로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일관되게 반대해왔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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