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된 댐 위로 포탄 날아다녀"…홍수에도 우크라 곳곳 격전

입력 2023-06-10 10:40   수정 2023-06-11 13:38

"폐허된 댐 위로 포탄 날아다녀"…홍수에도 우크라 곳곳 격전
러-우크라, 물 빠진 카호우카 저수지 사이 두고 포격전
자포리자서도 격렬한 전투…우크라, 러 본토-크림반도 연결점 정조준
우크라 주력부대 아직 투입 안 한 듯…강한 '한 방'은 언제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댐 파괴로 광범위한 홍수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드니프로강을 사이에 둔 채 전투가 격화하고 있다.
주변 일대에선 여전히 이재민 대피가 진행 중이지만 우크라이나군이 도하를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러시아군이 포격전을 강화한 결과로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을 겨냥한 대반격 작전을 준비해 온 우크라이나군 주력부대가 이곳이 아닌 동부 평원지대에서 진격을 시도 중이거나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댐 폐허 위로 포탄 날아다녀…전선 형태 변화 중"
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의 앤드루 크레이머 기자는 지난 6일 파괴된 카호우카 댐에서 불과 수㎞ 떨어진 헤르손주 소도시 베리슬라우를 전날 직접 찾았다고 한다.
그는 르포 기사에서 "근처에서 러시아군 야포들이 귀를 멀게 할 듯한 굉음을 내며 발사됐고, 카호우카 댐의 폐허 위로 포탄이 날아다녔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탄 픽업트럭은 강 건너 러시아군 탱크에 손쉬운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덜컹거리며 비포장 도로를 질주했다"고 보도했다.
카호우카 댐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군과 대치 중인 우크라이나군 현장 지휘관은 "병사들이 전투에 복귀할 것"이라면서 "이미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댐 파괴로 한국 충주호의 6.7배에 이르는 18㎦의 물 중 상당 부분이 빠져나가 거대한 뻘밭으로 변하는 중인 카호우카 저수지에서는 양국 군 간에 포격전이 재개됐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이 7일 하루 동안에만 34차례나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한 드니프로강 서안을 겨냥해 포격을 가했고, 카호우카댐 바로 남쪽 오드라도카먄카 마을에 소이탄을 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크레이머 기자는 이번 댐 파괴로 지형이 바뀌면서 주변 전선의 형태가 물리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호우카 댐 하류 지역에선 1마일(약 1.6㎞) 안팎이던 강폭이 몇 배로 확장된 반면, 댐 상류에선 지금껏 양국 군의 접촉을 가로막던 저수지의 면적이 크게 줄면서 양국 군 간의 간격이 보다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전망했다.

◇ 우크라 공세 초점은 자포리자?…"서방 지원 전차·장갑차 목격"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드니프로강 동안에 러시아군이 구축한 방어선 일부가 홍수에 휩쓸리면서 우크라이나군이 공세를 펼치기에 유리해졌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드니프로강 하구의 킨부른 반도에서도 이번 홍수로 러시아군의 방비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드니프로강과 흑해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킨부른 반도의 킨부른 사취(砂嘴·모래톱)는 드니프로강을 통한 수상교통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데 수위 상승으로 보급선이 끊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쪽 방면에서 우크라이나군이 공격을 감행한다고 해도 러시아군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조공(助攻)일 뿐이고, 주된 공세는 보다 동쪽에 위치한 자포리자와 도네츠크 지역의 넓은 평원이 될 것이라고 NYT는 전망했다.
실제, 자포리자와 도네츠크 일대에선 최근 며칠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모양새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벤 배리 선임연구원은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이 공개한 자료를 인용, 독일제 주력전차인 레오파르트2와 미국제 브래들리 장갑차가 자포리자주 오리히우 남쪽 토크마크 인근에서 목격됐다고 전했다.
사실이라면 대반격을 위해 준비된 서방 무기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전투여단들이 실제로 전투에 투입됐다는 첫 증거일 수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짚었다.
이와 관련해 한나 말리아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오리히우 주변에서 러시아군이 "적극적인 수비를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 우크라, 크림반도-러 본토 잇는 육상통로 정조준
오리히우는 자포리자주 제2 도시로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육상통로의 주요 거점인 멜리토폴에서 북동쪽으로 100㎞ 거리의 소도시다.
이 육상통로를 차단해 보급선을 차단,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서부 등지의 러시아군을 고사시키는 것이 대반격 작전의 주된 목표가 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돼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쪽으로 우크라이나군의 주공세가 펼쳐질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말리아르 차관은 자포리자주와 이웃한 도네츠크주 벨리카 노보실카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이 수개월 만에 공세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러시아가 완전 점령을 선언한 이번 전쟁 최격전지 바흐무트에서도 "매우 거친 전투가 진행 중"이라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흐무트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일부 성과를 거뒀음을 시사했지만, 대반격이 사실상 시작된 시점으로 알려진 이달 6일 이후 현재까지 전선이 크게 변동했다는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WP는 "우크라이나 정부나 군 당국이 의미 있는 성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전쟁의 이번 단계가 (동부전선에서 대대적 반격에 성공한) 작년 가을보다 훨씬 어려울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일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작전을 처음으로 직접 언급하면서 "현재까지 이뤄진 모든 반격 시도가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 우크라 주력부대 투입 안 한 듯…강한 '한 방' 날릴까
다만 우크라이나가 그간 준비해 온 주력부대는 아직 전면 투입되지 않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금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하며 우크라이나가 강한 '한 방'을 날릴 장소와 시점은 불명확하다는 이야기다.
우크라이나는 대반격 작전을 위해 5만∼6만명에 이르는 정예 병력으로 12개 전투여단을 구성했으며, 이 중 9개 여단은 서방제 최신무기로 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방부가 이날 패트리엇 대공 미사일과 포탄, 드론(무인기), 레이저 유도 로켓탄 등이 포함된 21억 달러(약 2조7천억원) 규모의 군사원조를 발표하는 등 서방의 추가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 여타 지역에선 러시아군의 산발적 공격으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중부 체르카시와 지토미르에선 8일 밤과 9일 새벽 로켓이 떨어져 1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했으며, 헤르손주의 주도 헤르손과 주변 마을에서도 8일 러시아군이 네 차례 포격을 감행해 4명이 사망하고 최소 17명이 다쳤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9일 밤 우크라이나군이 버티고 있는 흑해 연안 항구도시 오데사 일대에서 공습경보에 이어 여러 차례 폭음이 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러시아 본토에 대한 친우크라 민병대 등의 공격도 빈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러시아 서부 도시 보로네즈에선 9일 드론이 현지 항공기 제조시설을 공격하려다 격추돼 인근 주택가에 떨어지면서 3명이 다쳤다. 러시아 벨고로드주 당국은 우크라이나 국경과 4마일(약 6.4㎞) 떨어진 셰베킨스키 지역에 포탄 등이 떨어져 최소 3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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