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27일 프랑스 시슬리 본사서 K-아트 특별 기획전 개최
주프랑스 한불상공회의소 주최, 시슬리·갤러리 엠나인 등 주관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사용하고 버린 한지, 조개껍데기 가루, 불에 타버린 나무, 흙으로 만든 천연 안료….
얼핏 보면 하찮아 보이는 무언가의 일부분을, 창의력과 독창성을 가미해 캔버스 위에 모아놓으니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예술이 됐다.
프랑스 파리 8구에 있는 화장품 기업 시슬리 본사에서 8일(현지시간) 개막한 K-아트 특별전 '부분의 합: 회복과 결속'에 출품한 한국 현대 미술 작품들의 이야기다.
이달 27일까지 이어지는 전시회에는 서정민, 김덕용, 김기주, 채성필, 정영환, 정해윤, 김남표, 김시현 등 재료 혹은 주제에서 한국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작가 8명이 참여했다.
서예 교습소 등에서 사용하고 버리는 한지를 여러 겹 쌓아 돌돌 말은 뒤 이를 다시 잘라 촘촘하게 붙인 서정민 작가의 작품 '선' 시리즈는 '포커스 존'에 전시돼 주목받았다.
한지를 두툼하게 쌓아놓고 먹을 칠한 다음 칼집을 내 하늘이 열리는 순간을 표현한 서 작가의 다른 작품은 시슬리 그룹의 크리스틴 도르나노 부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르나노 부회장은 전시회 개막 전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서 작가의 작품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며 "그 작품들은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진다"고 평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서 작가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동양이 추구하는 철학적 사유들을 함축해서 작품에 담아냈다"며 수개월이 걸리는 고된 작업이지만 그렇게 흘린 땀이 울림을 줄 수 있어 만족한다고 웃었다.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유럽에 '흙의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채성필 작가는 흙에서 채취한 천연 안료로 만든 '물의 초상', '익명의 땅' 시리즈를 선보였다.
김기주 작가는 소나무를 정사각형 모양으로 조각내 불에 태운 다음 다시 배열한 '조합' 시리즈, 김덕용 작가는 나무판에 자개를 켜켜이 붙인 '차경-귀소' 등을 전시했다.
김시현 작가는 봉황 등 전통 문양이 그려져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보자기로 무언가를 감싸놓은 모습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중한 메시지' 시리즈로 프랑스 관객들을 만났다.
정해윤 작가는 열려있는 열린 서랍 위에 작은 새들이 앉아 팽팽하게 늘어난 하나의 실을 물고 있는 작품 '관계'를 통해 개별과 전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남표 작가는 '순간적인 풍경'에서 달빛이 비치는 검은 밤바다를, 정영환 작가는 '마인드 스케이프'에서 푸른 숲을 그려내며 색다른 자연 풍경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전시회는 주프랑스 한불상공회의소가 주최하고 시슬리 그룹, 한국 갤러리 엠나인, 갤러리 엠나인이 프랑스에 설립한 예술가 지원단체 FDA(la Fontaine des Artistes·작가들의 샘)가 주관했다.
김중호 한불상공회의소 회장은 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예술 분야는 아직 그만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 이번 전시회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세계 문화의 수도 파리 한복판에 있는 시슬리 본사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한류의 예술적 측면을 알리고, 더 나아가 프랑스와 한국의 예술 교류 강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미경 갤러리 엠나인 대표 겸 FDA 회장은 이번 전시에서 코로나19 대유행에 이어 전쟁의 장기화로 전 세계에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회복과 결속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예술은 민족, 사회, 국가의 소통을 촉진해 화합과 평화를 만들어내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세계의 결속과 예술적 헌신의 숭고함이 전 세계에 전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남편 위베르 도르나노와 함께 1976년 시슬리를 창립한 이자벨 도르나노는 축사에서 "이번 전시회는 위기와 후퇴로 기록된 지난 수년을 버텨온 우리에게 명상과 숙고, 나눔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감상을 전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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