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원청 노조, 中企·하청 근로자 지원 필요…양대노총이 목소리 내 줘야"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정부가 노동시장의 격차를 심화하는 현행 임금체계를 개편할 출발점으로 60세 이상 근로자부터 연공(여러 해 일한 공로) 중심의 임금체계에서 탈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원·하청, 대·중소기업 직원 간 근로조건이나 임금체계가 확연히 다른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격차가 있는 기업들뿐 아니라 해당 기업들의 노조끼리도 상생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제시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참석을 위해 1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를 찾은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은 연합뉴스와 만나 "노동시장의 격차 해소 관점에서 연공급제(연공 중심의 임금체계)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공을 과도하게 따지는 현행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연공 위주 임금체계로 인해 우리나라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의 임금은 1년 미만 근로자의 2.87배에 달한다. 일본은 2.27배, 유럽연합(EU) 15개국 평균은 1.65배다.
관건은 연공급제 탈피를 우리 사회가 과연 쉽게 수용할지다. 현실성 있는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올해 2월 노동 전문가 13명과 관계 부처 실장급 공무원 7명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상생임금위원회가 발족해 활동 중이다.
권 차관은 이런 틀 속에서 먼저 논의해 볼 만한 사안으로 60세 이상 고령 근로자들이 먼저 연공급제로부터 탈피한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적용받도록 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인구구조에서 60세 이상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는 불가피하고 이들에게마저 연공급제 적용을 고수한다면 오히려 누구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연공급제 탈피는 우선 60세 이상 분들에게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밝혔다.
권 차관은 정부의 노동 분야 최우선 개혁과제 중 하나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법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개별기업 단위로 임금인상을 목적으로 둔 노조 활동이 이뤄지다 보니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자 사이에 임금 격차가 커지고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도 심화한다"면서 "그간 기업 간의 상생 방안이 추진돼 왔는데 기업뿐 아니라 노조도 상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청·중소기업 근로자들을 위한 복지기금을 만들거나 임금 교섭 과정에서 일정 인상분을 하청·협력사 근로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데 쓰도록 양보하는 등 대기업·원청 노조가 상생의 통로가 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차관은 "이런 제안은 개별노조가 할 수 없을 것이고 양대노총이라는 상급단체가 해 줘야 할 것"이라며 "이게 상급단체가 노동운동에서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제적으로도 기업들이 공급망 내에서 협력사 등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관리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고 원·하청 간 상생 활동이 중시되고 있는데 개별노조가 자기 이익만 좇는 것은 한국 경제와 기업 경쟁력을 낮출 수밖에 없으므로 상급단체가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ILO 총회 연설과 질베르 웅보 ILO 사무총장 면담 등의 일정을 소화한 권 차관은 13일 카자흐스탄 노동사회보호부 1차관과 양자 회담을 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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