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군, 주 방어선 앞에 지뢰·장애물밭 만들고 포병·헬기 원거리 공격
마을 탈환해도 위험…러 소모전 전략 통하면 우크라 목표 달성 힘들수도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교착 상태를 깨기 위해 대반격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이 마을 몇 곳을 탈환하며 약간의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지만, 참호에서 나와 한발짝씩 전진해야 하는 병사들은 러시아군의 포격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전했다.
동부 격전지 도네츠크주(州)의 블라호다트네 마을은 우크라이나군이 이번 반격으로 되찾은 곳 가운데 하나다.
탈환의 기쁨도 잠시,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폐허로 변한 마을 풍경과 끊이지 않는 러시아군의 포격 소리로 두려움에 잠겼다.
거의 모든 집이 부서졌고, 마당에는 가슴 높이의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주변에선 러시아군이 버린 전투식량 껍데기가 발견됐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오래전 피난을 갔다.
제68정찰여단의 세르히이 구바노우 병장은 바깥에서 폭발음이 울리자 지하실에 몸을 숨긴 채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로켓포와 곡사포, 박격포, 헬기, 드론으로 공격하고 있다"며 "강렬한 경험의 총집합"이라고 했다.
어느 순간 귀를 찢는 곡사포의 금속성 굉음이 터져나오자 버려진 집 안에 있던 병사들은 바닥에 엎드렸다. 그나마 다행히도 폭발은 없었다. 한 병사는 욕설을 뱉으며 일어나 옷의 먼지를 털어냈다.
러시아군의 주력 방어선은 이 마을에서 불과 15㎞ 정도 떨어진 곳에 구축돼있다. 들판에는 빽빽한 지뢰밭과 참호, 장갑차 저지용 도랑, '용의 이빨'로도 불리는 콘크리트 장애물이 줄줄이 배치됐다.
대반격이 시작되고 열흘가량이 지났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진격 속도는 빠르지 않다.
러시아군의 전략은 우크라이나군이 주 방어선에 다다르기 전에 되도록 많은 병력과 장비를 소모하게 하는 것이라고 미국 싱크탱크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롭 리 선임연구원은 설명했다.
주 방어선 앞을 일명 '킬존'(kill zone)으로 만들어 온갖 장애물을 헤치며 나오는 우크라이나군에 집중 포격을 가한다면 주 방어선에서 기다리고 있는 러시아군은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블라호다트네 마을이 바로 '킬존'이다. 우크라이나군으로선 탈환 지역에서 지뢰를 찾아 제거하고, 러시아 병력 잔당과 싸워야 한다. 개활지를 천천히 수색하면서 새로운 엄폐물과 사격 위치를 찾을 수밖에 없어 러시아군의 원거리 공격에 취약해진다.
이런 러시아의 전략이 통한다면 우크라이나군이 그간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갖춘 병기와 병력은 결국 주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어렵사리 방어선을 뚫어내더라도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육교 파괴 같은 대반격의 목표는 달성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육교를 끊으려면 방어선을 넘어 100㎞나 더 진격해야 한다.
반면 러시아군으로선 1천㎞ 길이의 방어선이 부담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 주력 병력이 어느 지점에 주력 병력을 집중할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도네츠크주 벨리카 노보실카 남쪽과 자포리자주 오리크히우 남쪽 등 서로 80㎞ 떨어진 두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두 곳에 힘을 주자 러시아는 어느 쪽에 지원군을 보내야 할지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우크라이나군 제68정찰여단 병사들은 발라호다트네 마을에서 퇴각하려던 러시아군 1개 중대, 약 100명이 본대에서 낙오됐다며 추격에 나섰다. 부서진 집으로 가득한 마을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하면서 수색이 벌어졌다.
지금껏 이들이 생포한 러시아군은 훈련도 거의 받지 않은 죄수들이었다. 러시아가 주력 병력은 뒤로 빼놓고 범죄자 같은 사람들을 소모용 장애물처럼 전선 앞에 배치했을 수 있다고 짐작되는 대목이라고 NYT는 설명했다.
xi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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