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숨은영웅] 18살에 나이 속여 입대했다…"한국인 자유 위해 싸우려고"

입력 2023-07-08 06:25  

[한국전 숨은영웅] 18살에 나이 속여 입대했다…"한국인 자유 위해 싸우려고"
종전 후에도 9개월간 전우 시신 1천여구 수습한 호주 참전용사
"이제 유튜브로 한국전 알려…누군가 북한의 자유 위해 싸워줘야"



(시드니=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당신이 자유를 원한다면 이를 위해 싸워야 하며, 자유를 얻었다면 이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불행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방식입니다."
지난 7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에서 만난 89세의 호주인 한국전 참전용사 케빈 존 바인햄 씨는 한국과 호주의 후대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며 이같이 힘주어 말했다.
1933년 11월 호주 퀸즐랜드주에서 태어난 바인햄 씨는 18세이던 1952년에 입대했다. 당시 호주에서는 해외로 파병되려면 19세가 넘어야 했고, 21세 미만이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다. 나이 제한에 걸린 그는 자신의 나이를 22세로 속이고 입대했다.
바인햄 씨는 "대학교에 가기보단 군에 들어가 모험하고 싶었다"며 "나에게는 군대가 대학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입대 후 호주에서 훈련받았고 이듬해 일본을 거쳐 1953년 6월 한국 부산에 도착했다. 그가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부산은 높은 건물은커녕 나무조차 없이 흙뿐인 온통 갈색의 폐허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바인햄 씨는 부산을 거쳐 호주 왕립연대 제3대대 소속 보병으로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의 한 최전선에 배치됐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친했던 입대 동기를 찾으려 했다가 그가 불과 3일 전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인햄 씨는 "캠프에 도착해 입대 동기이자 일본에서 함께 훈련받다가 조금 먼저 전장에 배치된 전우를 찾자 그가 사흘 전에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너무 큰 충격을 받았지만,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이 바로 전투에 나서고 북쪽으로 전진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장에서 주로 수색 작업을 했다. 순찰하며 호주군 전선에 숨어든 중공군과 북한군을 찾아내고 이들을 붙잡거나 사살해야 했다.
전선에 배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색을 하던 도중 북한군 무리를 발견했다. 바인햄 씨 등은 총격전을 벌였고 북한군을 추격했다. 도망가던 북한군은 산속 작은 동굴로 몸을 숨겼고, 그는 동굴 속에 수류탄을 던져 사살했다.
이후로도 많은 전투 속에서 전우들이 죽었고 적과 싸우며 죽음이 일상인 전쟁터에 빠르게 적응했다.
바인햄 씨는 "자동화기를 사용하다 보니 막상 전투가 벌어져도 항상 순식간에 끝났고, 사람들은 죽어 나갔다"며 "전쟁터에서는 시신 썩는 냄새가 심하게 났지만 금세 익숙해졌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전선에 배치된 지 2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 오전 라디오를 통해 그날 밤부터 모든 전투를 중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정전 이후에도 9개월여 더 한국에 남았다. 이 기간 총 대신 삽을 들고 전장에서 숨진 전우들을 찾아 수습하는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서로 총을 겨눴던 북한군, 중공군과 함께 전사자를 찾는 작업도 했다.
바인햄 씨는 당시 중공군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는 담배를 나눠 피우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함께 숨진 동료를 찾았다. 1천구가 넘는 시신을 묻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호주로 돌아온 뒤에도 군에 남았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간 무력 분쟁인 일명 '보르네오 대치' 때와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다.
제대 후에 보석 사업을 하다 은퇴한 뒤에는 관심 분야에 대한 책을 썼으며, 자신의 군 시절 경험담을 담은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한국전쟁을 알리는 등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바인햄 씨는 "한국을 돕기 위해 나섰던 나라는 22개국이지만 사람들은 주로 미군만을 생각한다"며 "사람들은 호주나 태국, 콜롬비아 등 여러 나라가 참전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제대로 된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나는 후손들에게 한국전에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참여했고 희생했는지 알려주기 위해 책을 썼고 최근에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는 6.25전쟁 당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파병을 결정, 총 1만7천164명이 참전했다. 이 중 340명이 전사하고 1천200여 명이 다쳤다.
그는 한국인이나 호주의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는 말에 "매우 간단하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바인햄 씨에게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묻자 "북한 문제는 전보다 더 복잡해지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이 싸울 수 없다면 "누군가는 북한의 자유를 위해 싸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70년 전 한국을 위해 전쟁터에 나섰던 것처럼 말이다.


laecor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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