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SCMP "美, 中의 대만 '핵심 이익' 침해한 것이 원인"
中, 美와 군사대화 재개시 위협 활동 제한될까 우려하는 듯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 제한된 수준으로 '해빙'에 들어갔지만, 군사 대화 재개는 거부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18∼19일 블링컨 장관이 친강 외교부장과 왕이 당 중앙정치국원에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만남으로써 미중 관계의 안정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고위급 대화를 지속하기로 했으나, 중국은 미국의 군사 대화 재개 요구에는 선을 긋고 있다.
중국은 지난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 간 회담을 하자는 미국의 제의를 거절한 바 있다.
중국의 '정찰 풍선' 사건이라는 돌출 변수에도 미국이 블링컨 장관의 이번 방중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이유는 미중 간 위기관리의 필요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핵심이라고 할 미중 군사 대화를 중국이 거부하는 속셈에 관심이 쏠린다.
◇ 군사·안보 대화채널 복원 요구하는 美…손사래 치는 中
블링컨 장관은 방중 기간에 미중 관계의 악화일로 속에서 오판에 따른 불의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은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겠지만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책임 있게 관리하자는 논리로 친강 외교부장과 왕이 당 정치국원 등을 설득했다. 그러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와 관련, 블링컨 장관은 방중 이틀째인 19일 주중 미 대사관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비록 양측간 방대한 이견에 대해 "분명히 인식"했지만, 자신과 중국 지도부가 관계 안정화 필요성에 동의했다고만 말했다.
중국 측은 조만간 친강 외교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고위급 협의를 이어가자는 완곡한 표현으로 미국의 군사 대화 재개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세라 베런 국가안보회의(NSC) 중국·대만 담당 선임 국장은 20일(현지시간) 브리핑을 통해 미중 양국의 군 대화 구축으로 경쟁·위기 커뮤니케이션을 관리하고 잘못된 의사소통과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중국에 군사 대화 재개를 재차 촉구했다.
그간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첨단 반도체·핵심 광물 공급망 재편을 필두로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중국 배제 정책'을 펴는 가운데 대만과 남중국해 등에서 미중 충돌 가능성이 커져 왔다.
실제 지난 3일에는 대만해협을 지나던 미 해군 구축함에 중국 인민해방군 군함이 150m 이내로 접근했을 정도로, 중국은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미국을 자극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대만 해협이 '우크라이나전 다음 전장'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외에도 바이든 미 행정부는 중국이 미국의 '앞마당'인 쿠바에 정보 수집뿐 아니라 군사훈련 용도의 시설을 설치하려 한 것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존 커비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기밀과 국가 안보를 지킬 수 있도록 관련 조치를 할 것"이라면서 일단 절제된 기조로 대응했으나, 이는 언제든 미중 관계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행정부는 아울러 핵무기 배치 문제에서 인공지능(AI)의 무기 전용 가능성 규제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군비 통제 회담을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군사 대화 재개 여부를 대미 카드로 활용하려는 분위기다.
◇ 中, '핵심 이익' 대만 문제에 美의 태세 전환 요구
샹그릴라 대화 계기로 미중 국방장관 회담을 열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한 중국은, 당국 차원에서는 아직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애초 중국의 관영매체들은 자국의 리상푸 국방부장에 대해 미국이 제재를 해제하지 않아 미중 국방장관 회담을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장비개발부장 재임 중에 러시아로부터 수호이(Su)-35 전투기 10대와 S-400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불법 구매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리상푸 부장을 제재 명단에 올려놓은 게 부당하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책임을 물어 미국은 관련된 주요 인물을 제재해왔고, 리상푸는 2018년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올랐다.
그런데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이 보란 듯이 2019년 리상푸를 인민해방군 최고 계급인 상장(上將·대장급)으로 진급시켰다. 이어 지난 3월에는 국방부장 겸 국무위원으로 임명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미 행정부가 리상푸 부장의 제재만 해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군사 대화를 거부하는 것과 관련해 중국의 구실이 하나 더 늘었다.
중화권 매체인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1일 미국이 대만 등의 문제에서 '핵심 이익' 침해를 지속하기 때문에 미중 군사 대화에 응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국무원 고문인 스인훙 인민대 교수는 미국이 블링컨 장관의 방중을 통해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 방지를 원하면서도 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도전'을 지속할 것임을 시사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중국은 군사 대화 재개로 미국이 대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을 '보증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이 태세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미중 군사 대화 재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강 외교부장도 블링컨 장관과의 회담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이며 중미 관계의 가장 중대한 문제이자 가장 두드러진 위험"이라며 미국에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힌 바 있다.
◇ 中, 군사 대화 거부 지속 의지…美 대응 주목
중국은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미중 고위급 군사 교류를 중단했다.
이를 빌미로 중국은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사실상 침공을 염두에 둔 대만 봉쇄 군사훈련이라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어 수개월간 군용기와 군함을 투입해 대만해협의 위기를 고조시켜왔다.
지난 4월에도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과의 미국 내 회동을 이유로 재차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차이 총통이 이끄는 대만 집권당이 독립 성향을 보이면서 중국은 2016년부터 대만과 당국 간 교류를 중단하고 미국 등 전 세계에 대해서도 대만과의 교류와 군사적 원조를 중단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대만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카드로 대만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시 주석 주도로 '대국굴기'의 깃발을 들고서 대외적인 팽창에 주력하는 중국에 맞서 이를 포위·압박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해온 미국은 대만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중국은 바이든 행정부에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를 압박해 대만 지원을 최소화하는 한편 대만의 정권 교체에 주력하는 양동작전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에서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아닌 친중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 당선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다만 차선책으로 제2야당인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 당선도 염두에 두는 기색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적어도 내년 1월까지는 필요한 경우 대만을 겨냥한 무력시위로 안보 위기를 고조함으로써 대만 유권자가 집권당 후보를 기피하도록 한다는 셈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미국과 군사 대화를 복원한다면, 대만해협의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군사 훈련은 쉽지 않아질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의 대응이다. 이미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으로 중국 정책의 강도를 낮춘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군사 대화 재개의 장으로 끌어낼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 주목된다.
미국은 동맹과 함께 인공지능(AI)과 정밀 무기 등에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 분야 등에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디리스킹에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군사전문가 저우천닝은 SCMP에 미국이 중국을 존중하는 성실함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중국은 미중 군사 대화 재개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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