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제재 '뒷구멍'…우크라전 러 무기에 미국부품 60% 넘어"

입력 2023-06-22 10:02   수정 2023-06-22 17:12

"중국이 제재 '뒷구멍'…우크라전 러 무기에 미국부품 60% 넘어"
우크라 싱크탱크, 전쟁터 무기·무역통계 등 분석 결과
"반도체도 대량유입…불투명한 기업경영·유령업체로 거래 은폐"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러시아가 서방이 부과하는 수출규제의 허점을 노려 우크라이나전에 필요한 무기의 핵심부품을 중국을 통해 서방에서 사들인다는 심층 분석이 나왔다.
특히 러시아 무기에 사용되는 수입 핵심 부품의 60% 이상은 대러시아 제재를 주도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경제대학의 싱크탱크 KSE 연구소의 보고서를 입수해 이 같은 실태 분석을 보도했다.
KSE 연구소는 우크라이나 당국이 전장에서 획득한 러시아 무기를 분석한 결과와 자체 확보한 올해 1분기 러시아 무역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이번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작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3월부터 12월까지 서방의 수출 통제에도 불구하고 203억 달러(약 26조원)의 군사 장비 관련 부품을 수입했다. 이 규모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2021년 대비 15% 감소한 수치에 불과하다.
러시아 무역 통계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와 중동에 본사를 둔 155개 기업에서 제조한 기술을 구매했으며 이 가운데 59개 기업이 미국 업체다.
작년 3월∼12월 러시아가 수입한 이중용도 제품(민간뿐만 아니라 군사장비에 전용될 수 있는 품목)의 64%도 미국 기업이 생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58종의 러시아 핵심 군사 장비에서 확인한 1천57개의 외국 부품 가운데서도 66%에 해당하는 705개가 미국산으로 집계됐다.
앞서 로이터통신 등 일부 언론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소수의 미국 대기업 부품을 수입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알려진 것보다 광범위한 미국 기업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러시아에 무기 부품을 공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러시아 수입 부품의 절반은 주로 마이크로칩과 프로세서 등 반도체가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제 순항 미사일인 Kh-59, Kh-101, 칼리브, 이스칸데르-K 등에 수입 마이크로칩, 프로세서, 메모리 장치, 트랜지스터 등이 탑재된 것을 발견했다.
단거리 방공 미사일인 토르-M2와 T-72 전차를 포함한 7종의 러시아산 장갑차와 대포, 이란산 샤헤드-131, 샤헤드-136 등 7종의 무인기(드론)에서도 유사한 수입 부품이 발견됐다.
외국산 부품의 주 수입 통로는 러시아의 우방인 중국으로 지목됐다.
러시아 무역 자료에 따르면 작년 3월∼12월 러시아는 핵심 부품 총 가치의 72%를 중국에서 수입했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의 22%에서 대폭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중국에서 실제 생산된 제품은 일부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무역 데이터에 따르면 러시아는 작년 10월∼12월 마이크로칩의 87%를 중국 판매업체로부터 수입했으나 이 가운데 중국에서 제조된 것은 40%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로칩 같은 핵심 부품이 합법적 기업 간 판매에 재판매를 거듭하다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 넘어가면 러시아 유령회사가 이를 사들여 러시아에 들여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러시아 무기에 쓰이는 미국산 부품의 주요 생산자는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 아날로그 디바이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인텔 코퍼레이션,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스(AMD) 등 5개 기업으로 나타났다.
이들 5개 기업은 뉴스위크의 논평 요청에 모두 "수출 통제 및 제재를 준수하고 있으며 러시아나 그 동맹국에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수출 통제 관련 분석가들 역시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이나 미 동맹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 러시아의 전쟁을 도울 목적으로 핵심 기술을 러시아에 직접 판매한 사례는 알지 못한다고 뉴스위크에 전했다.

실제 전쟁 이후 외국 기업의 러시아에 대한 핵심 부품 직접 판매 비중은 전쟁 전년도 45%에서 작년 3월∼12월 2%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뉴스위크는 보도했다.
그런데도 러시아가 대량의 미국산 부품을 구매해서 쓸 수 있는 건 수출 통제 시스템에 일부 허점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관측됐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은 통상 유통업체와 같은 해외 거래 파트너와 제품의 최종 사용자를 조사해 제품이 엉뚱한 사람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민간 기업은 무역 규정 준수 책임자를 고용해 심사 과정을 처리한다. 만일 제조업체가 이중 용도 제품에 대한 의심스러운 주문을 받으면 이 책임자는 해당 수입업체가 미 상무부나 국무부, 또는 기타 기관의 제재를 받는지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 정부로선 민간 기업의 자체 실사나 세관 신고 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관 신고서 위조 등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그 결과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게 위험 관리 회사 SEIA의 공동 설립자 에리카 트루히요의 말이다.
트루히요는 뉴스위크에 "특히 러시아와 중국 같은 국가에서는 기업 소유 구조가 매우 숨겨져 있다"며 "중국에선 특히 실사하기가 어려운데, 한 회사가 등장해서 한두 번 거래하고 다음 날 문을 닫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트루히요는 무역 규정 준수 부서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연간 수백, 수천 건의 거래를 분석할 시간과 재원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무부는 그러나 뉴스위크에 "러시아가 수출 통제와 제재를 우회하려는 시도는 제재가 효과가 있다는 증거"라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단속하기 위해 유럽연합 및 기타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s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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