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옐친, 반대세력 축출 시도 진압했지만 결국 권력 잃어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 사태가 발생한 지 하루 만에 정치적 타결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향후 국정 장악력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여러 추측이 나온다.
서방 언론 매체들은 옛소련 시절 2차례의 쿠데타가 실패했으나 결국 당시 지도자들은 오래되지 않아 권력을 내려놓게 된 역사를 소환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5일(현지시간)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 사건과 연관 지어 러시아의 쿠데타 사례 2가지를 거론한 뒤 "처음에는 실패한 쿠데타였지만 그 이후로는 지도자의 권력이 살아남지 못했다"고 짚었다.
첫 사례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1991년 8월 옛소련에서 당시 공산당 보수파들이 그를 실각시키려고 일으킨 쿠데타다. 반란 세력은 여름휴가 중이던 고르바쵸프 당시 대통령을 별장에 감금하기도 했다.
반란 세력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결성하며 권력을 차지하려고 했지만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이 전국적 지지를 얻은 반쿠데타 시위를 주도하면서 쿠데타는 명분을 잃고 실패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다시 권좌로 돌아왔지만 옐친이라는 인물에 대중적 지지가 쏠리고, 소련 해체 요구가 드세지면서 같은 해 12월 사임을 발표했다.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권력 교체와 옛소련 해체라는 더 큰 격변이 뒤따른 셈이다.
옐친 전 대통령 역시 집권기에 정권 전복 시도를 겪었다.
1993년 9월 정치적 반대 세력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 등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자신을 탄핵하려고 했다.
당시 탄핵 주도 세력을 지지하는 시위대는 소총 등을 보유한 소련군 출신자들이 합류해 있었으며 경찰을 공격하고 모스크바 시청을 점령하는 등 무장 반란 조짐이 확산했다.
옐친 당시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육군 병력을 동원해 무력으로 반대 세력을 제압했다. 옐친 전 대통령은 의사당에 실제 포격을 가하는 등 강경 진압을 불사했다.
이를 통해 그는 정권을 지키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그에 대한 지지는 지속해서 하락했다. 1999년 말 그는 임기를 6개월 남겨두고 전격적으로 사임했고, 대통령 직무를 푸틴 당시 총리에게 위임했다.
미국 NBC 방송도 푸틴 대통령이 당장은 권좌를 유지하겠지만 러시아에서는 실패한 쿠데타일지라도 후폭풍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NBC가 인용한 이보 달더 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소련 지도자는 쿠데타를 진압하고서도 몇 달 뒤에는 권력을 잃었다"면서 "푸틴은 지금으로선 살아남겠지만 지난 24시간은 그의 권좌 유지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고 트위터에 썼다.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의 거리에 늘어선 탱크들은 핵무기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야기한 1991년 옛소련 쿠데타를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
마크 폴리메로풀로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유럽·유라시아 비밀작전 책임자는 로이터에 "정보계는 체첸 수장 람잔 카디로프와 같은 악당이나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를 차지하려 할 가능성을 우려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무장반란 하루 만에 모스크바 진격을 접기로 한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자신들의 행동이 쿠데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반란 사태가 장기화하지 않은 점도 이전 쿠데타 사례들과 차별점이다.
그러나 프리고진이 군 수뇌부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무장 반란을 벌인 것은 푸틴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한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이번 사태로 러시아 내 권력 균열의 단면이 노출된 셈이라는 평가도 있다.
옛소련 시절 정보요원으로서, 그리고 옐친의 후계자로서 실패한 쿠데타가 어떤 결과를 야기했는지 현장에서 생생히 지켜본 푸틴은 그때의 교훈을 잊었을 리 없다. 그는 전날 대국민 연설에서 '배신'을 경계하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푸틴 대통령은 "군대 뒤편의 정쟁과 음모가 거대한 재앙과 영토 파괴, 내전이라는 비극을 낳는다"면서 "우리는 내부의 배신행위를 포함한 모든 위협으로부터 국민과 국가를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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