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택배노조를 허용하는 나라는 없다?

입력 2023-06-28 06:17   수정 2023-06-28 08:08

[팩트체크] 택배노조를 허용하는 나라는 없다?
택배기사 과거엔 '직고용 정규직'…외환위기 이후 '개인사업자'로 전환
해외선 직고용 사례 적지 않아…법적지위 상관없이 노조 설립·가입 허용

(서울=연합뉴스) 우혜림 인턴기자 =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택배기사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가열되는 모습이다.
김슬기 비노조 택배 연합 대표는 지난 14일 국민의힘 민생특별위원회가 주최한 택배산업 종사자 간담회에서 "택배기사는 모두 개인사업자인데 전 세계에서 개인사업자에게 노조를 만들게 허용해주는 나라는 없다"며 "택배노조라는 것 자체가 존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부분의 택배기사가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형태로 계약을 맺기 때문에 노조를 결성할 수 없고, 이를 허용해주는 외국 사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택배기사 노조를 허용하는 나라가 없다는 김 대표의 주장은 사실일까?



고객이 물품을 주문한 뒤 배송이 이뤄지기까지 택배 업무는 크게 '집화-운송-대분류-운송-소분류-배송'의 6단계로 이루어진다. 이중 택배기사는 기본적인 배송 업무 외에 주문된 물품을 인수하는 집화 작업과 이를 각 지역 터미널에서 분류하는 작업 등을 주로 담당해왔다.
우리나라 택배기사의 업무 형태는 다양하지만 택배회사(본사)에 직접 고용되기보다는 본사와 위·수탁 계약을 맺은 지역별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대리점과의 계약도 고용보다 위·수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의 2017년 보고서 '서울지역 택배기사의 노동실태와 정책개선방안'에 따르면 서울지역 택배기사 500명 중 80%가 본사가 아닌 대리점과 계약을 맺었고 이중 위탁(위임·도급) 계약 비율이 88.7%였다.
이러한 업무 방식 때문에 택배기사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여겨진다.



택배기사가 처음부터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의 2022년 보고서 '택배 노동자의 노동 및 안전보건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택배 서비스가 도입된 1990년대 초 국내 택배사들은 택배기사를 비롯한 택배 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했다. 당시 택배기사는 단순한 직원이 아닌 최일선에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사원으로 대우받았으며 택배업은 임금과 노동조건, 고용안전성 등의 측면에서 '좋은 일자리'로 인식됐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택배 사업에 대한 정부 규제가 완화되면서 택배기사들의 지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 언론 보도를 보면 국토교통부(당시 건설교통부)는 신고 후 허가를 받아야 했던 택배 요금을 자율화하고 사업 제한 조건을 없애는 등 택배업을 자유경쟁 체제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택배업체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경쟁이 심해지자 택배사는 직영으로 운영하던 대리점을 위탁 계약으로 바꿔 관리 비용을 절감했다. 이에 더해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택배사는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택배기사 고용을 위탁 대리점으로 외주화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17년도 노사관계 실태분석 및 평가' 보고서에서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의 택배업체는 택배기사들에게 개인사업자 등록과 함께 개인소유 화물차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택배 물량을 주지 않겠다고 요구했고 이에 따라 택배기사들은 노동자에게 개인사업자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택배기사의 지위가 이처럼 달라진 뒤 택배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약 2억개였던 국내 택배 물량은 2021년 약 36억2천만개로 급증했으며 이에 따른 매출액은 같은 기간 6천466억원에서 8조5천887억원으로 늘어났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 1인당 택배 이용은 2020년 기준 연 65.1개로 일본(연평균 35개)의 2배에 가깝다.



반면 국내 택배 산업이 급성장하는 동안 택배 평균 배송 단가는 떨어졌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평균 택배 운송단가는 2000년 3천500원에서 2020년 2천221원으로 1천200원(36%) 이상 낮아졌다. 택배회사들의 물량 확보 경쟁이 택배 단가 인하 경쟁으로 이어진 탓이다.
낮은 택배 단가는 집화나 배송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택배기사의 수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서울연구원의 2021년 보고서 '택배기사 근로환경 문제와 개선방안'에 따르면, 2020년 택배 단가를 기준으로 분석했을 때 택배기사가 실제로 받는 배송 수수료는 박스당 616원이었다.



하지만 택배기사는 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택배회사에 수수료 인상을 요구할 수 없고 장시간 일할 경우에도 근로기준법상 초과수당을 받을 수 없다.
반면 개인사업자로서 택배기사의 업무 자율성은 높지 않은 편이다. 한국사회법학회의 2021년 논문 '택배기사의 노동 현황과 산업재해 예방 방안'에 따르면 택배기사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집화에서 배송까지 단계마다 정보를 입력해야 해 사실상 택배회사부터 임금노동자에 준하는 관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이중적 지위로 인한 불만이 누적되면서 택배기사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연대노조)이 출범하면서 택배기사의 고용과 처우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7년 당시 고용노동부는 택배기사들이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었음에도 택배회사와 대리점으로부터 상당한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는 점 등을 들어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택배연대노조에 노조설립 필증을 발급했다.
이어 서울행정법원은 2019년 택배기사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노동조합법은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제정된 근로기준법과 목적 등이 다르다"라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사업자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는지 등의 여부에 따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서울행정법원은 올 1월 CJ대한통운을 택배연대노조의 사용자로 인정해 단체교섭에 응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같은 과거 정부와 법원의 판단에 비춰보면 택배기사는 법상 개인사업자라고 할지라도 노동조합 설립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의 경우 국가·기업별 특성에 따라 고용 형태가 다양하지만 택배기사가 택배업체와 직접 고용 계약을 맺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의 거대 물류·택배회사 UPS와 독일의 택배회사 DHL 본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택배기사 채용 정보를 보면, 정규직·비정규직 등 형태가 일정하지는 않아도 대부분 고용 계약으로 채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기업은 기업의 윤리 지침을 확인할 수 있는 인권 협약서 등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일본 최대 택배업체인 야마토운수의 경우 2018년부터 새로 입사하는 전일제 택배 운전기사를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사내 제도를 구축하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계약직 채용 후 2년 뒤 심사를 거쳐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했었다.



우리나라처럼 개인사업자로 업무 계약을 맺은 택배기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해외 사례도 있다. 일본 일간지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의 일본지사 '아마존재팬'의 택배기사들은 지난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아마존재팬이 위탁한 운송 회사나 하청업체와 위탁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로 위탁 회사와 아마존 본사에 업무 조건 개선 등을 위한 단체협약을 요구했다.
영국에서는 개인사업자 택배기사들이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기도 했다. 60만명의 조합원을 둔 영국일반노조(GMB)에 따르면 영국 택배회사 헤르메스(Hermes)의 개인사업자 택배기사 200명은 GMB의 도움을 받아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헤르메스의 택배기사들은 개인사업자 신분을 유지하면서도 최저임금과 유급휴가, 노동조합 가입 등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정리해 보면 외국에서는 택배기사가 노동자로서든 개인사업자로서든 법적인 지위에 상관 없이 노조 가입이나 설립을 허용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택배기사 노동 문제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국내 택배 산업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국내의 택배업체들은 늘어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주문 뒤 이틀 내로 배송을 완료하는 '익일배송'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이처럼 신속한 택배 시스템은 해외에선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택배기사 노동 문제를 외국과 비교하려면 외국도 우리나라 택배 기사처럼 장시간 노동을 하고 익일 배송 체계로 빠르게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환경인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woo102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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