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매체 "오징어게임 제작비 미드 4분의 1…엄청난 무급노동 덕분"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드라마 '오징어게임'과 같은 K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통해 승승장구하는 이면에는 고질적인 노동 착취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일간지 LA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서울발 기사를 통해 최근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가 저비용으로 막대한 성공을 일굴 수 있었던 기반에는 불공정 계약과 무급노동 등이 있다면서 한국 콘텐츠 제작 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조명했다.
LA타임스는 지난해 전 세계적 인기를 끈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9개 에피소드로 이뤄진 오징어게임은 에피소드당 240만달러(약 31억6천만원)로 제작됐다. 넷플릭스의 또 다른 인기 시리즈인 미국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제작비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게 제작된 오징어게임은 지난해 공개 후 28일 동안 시청 시간 16억5천만시간으로 넷플릭스 역대 최고 기록을 냈고,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시상식에서 6개 부문을 수상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이 자사의 기업 가치를 약 9억달러(1조2천억원) 높인 것으로 파악했다.
각본가이자 연출자인 황동혁 감독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지만 부자가 되지는 못했다고 신문은 꼬집었다.
지식재산권이 넥플릭스에 넘어갔고 첫 방영 이후 작품 재사용시 작가·감독·배우들에게 지급하는 로열티인 재상영분배금(residual)도 받지 못하는 등 불리한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은 이렇게 '가성비' 좋은 한국 콘텐츠의 대명사가 됐다. '킹덤'이나 '지옥' 등 뒤이은 히트작들도 비교적 저렴한 예산으로 제작됐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그에 맞게 지급되지 않는 임금 등 불법 초과 노동 관행 또한 이런 '저비용 고효율' 콘텐츠 생산을 가능케 했다.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모든 것은 인건비로 귀결된다. 엄청난 양의 무급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LA타임스에 말했다.
다수가 프리랜서로 고용돼 표준근로계약서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내 제작진은 할리우드 같은 파업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행법상 넷플릭스는 고용주가 아니어서 불공정 노동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한국 콘텐츠 업계가 스스로를 '지속 불가능한' 길로 몰아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넷플릭스와 6부작 드라마를 계약한 한 작가는 "지금 아무리 많은 콘텐츠가 수출돼도 노동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한계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하지만 업계의 많은 이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비뚤어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K콘텐츠의 성공이 현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는 증거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가 막 한국에 진출했을 때는 미국과 같은 엄격한 노동기준이 한국 콘텐츠 업계에도 적용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을 계기로 '가성비 한국 콘텐츠'가 하나의 기준이 되고 콘텐츠 업체의 넷플릭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노동환경 개선 여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LA타임스는 짚었다.
김 지부장은 "그렇게 싼 가격에 세계적 히트작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은 그것이 (넷플릭스의) 기준선이 됐음을 의미한다"며 "그들은 한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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