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석방후 첫 공개 메시지 "권위주의 정권, 시민권 보장 안 해"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실화에 기반한 할리우드 영화 '호텔 르완다'의 실제 주인공 폴 루세사바기나(69)가 1일(현지시간) "르완다 국민들은 조국에 갇힌 죄수들"이라고 말했다.
납치와 불법 구금 등 영화 같은 역정을 또다시 겪은 뒤 지난 3월 말 르완다에서 석방돼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그는 이날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에서 "르완다 감옥에서 939일간의 지옥을 경험하고 나온 뒤 첫 메시지"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영상을 공개한 오늘은 1962년 르완다가 (벨기에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날"이라며 "안타깝게도 61년이 지난 지금도 르완다에 들어선 권위주의 정권은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루세사바기나는 "한평생 르완다 국민의 인권과 르완다의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면서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은 2004년 '호텔 르완다' 영화가 나오면서 정치적 탄압과 폭력으로 내 입을 틀어막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권의 압박은 2005년 11월 9일 미국에서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은 뒤 더욱 심해졌다"면서 "급기야 2020년 8월 나를 납치해 고문하고 감금한 뒤 거짓 혐의를 씌워 재판에 넘겨 25년 형을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은 자신들에게 비판적이거나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납치하고 감금하고 고문하고 살해한다"며 "나는 운이 좋아서 다른 많은 사람처럼 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루세사바기나는 현재의 르완다가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유지되던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비슷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진실의 편에 선 소수의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며 권위주의 정권에 억압받고 있는 르완다 국민들을 위해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루세사바기나는 르완다 정권에 반대하는 조직의 테러 활동에 연루된 혐의로 2021년 9월 르완다 법정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고 형을 살다가 카타르의 중재와 미국·르완다 정부 간 협의를 통해 지난 3월 25일 석방됐다.
1994년 내전 중이던 르완다에서 대학살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지배인으로 있던 밀 콜린스 호텔에 1천200여명을 보호하며 목숨을 구한 그의 이야기는 2004년 돈 치들 주연의 영화 '호텔 르완다'로 다뤄졌다.
이후 명성을 얻은 루세사바기나는 투치족 반군 지도자 출신의 카가메 대통령이 인권을 유린한다는 비판 활동을 이어가다가 2020년 8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사라졌고, 며칠 뒤 르완다에서 수갑을 찬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가족들은 루세사바기나가 납치 후 압송됐다고 주장했다.
르완다 정부는 루세사바기나의 석방 전날 그가 작년 10월 카가메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했다. 편지에는 사면받고 풀려난다면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고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편 AFP 통신은 이 영상이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있는 그의 집에서 촬영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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