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 데이비스 의대, 2012년부터 입학전형에 소득·부모학력 반영…"소수자 출신↑"
대법원 "대리적 방식도 안돼" 명시…'역경 점수' 법적 논란 가능성
CNN "우대정책 위헌에 찬성이 다수…'낙태권 폐기' 같은 반발 없을 것"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미국 대법원이 대학 입시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해온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정책에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대학가가 다양한 대안을 모색 중이라고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일부 대학에서 지원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겪은 어려움을 가산점 요소로 평가하는 이른바 '역경 점수'(adversity scores)가 주목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대법원 결정이 내려진 지난달 29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위헌 결정을 비판하면서 "자격을 갖춘 지원자 중 학생이 극복한 역경을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고려하기를 제안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법원 판례에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대학 구성원 사이에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시각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와 관련, NYT는 2019년 미국 대학 입학 자격시험 SAT를 관장하는 대학위원회(College Board)가 도입한 '역경 점수'와 함께 2012년부터 운영 중인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UC 데이비스)의 학생 선발 과정을 소개했다.
UC 데이비스 의과대학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사회경제적 차별 척도'(SED)에 따라 모든 지원자를 0∼99점으로 등급을 매긴다. 이를 학교 성적, 시험 성적, 추천서, 자기소개서 및 면접 점수 등 지표와 종합한 점수를 통해 최종적으로 합격자를 가려내는 것이다.
특히 1996년 이후 인종에 따른 입학 우대 정책을 금지해온 캘리포니아주(州)의 주립대학에서 이런 정책을 운용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고 NYT는 짚었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미시간, 플로리다, 워싱턴,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오클라호마, 뉴햄프셔, 아이다호 등 9개 주는 이미 공립대에서 소수인종 우대가 금지된 상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이미 계층간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의과대학협회(AAMC) 통계에 따르면 의사의 자녀는 다른 또래보다 의사가 될 확률이 24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흑인 의사 숫자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고 NYT는 언급했다. 미국 내 흑인 인구는 13.6%이지만, 개업 의사 중 흑인 비율은 6%에 불과하다.
AAMC 회장인 제시 M. 에런펠드 박사는 "환자가 비슷한 출신의 의사로부터 진료받을 때 더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의료계 내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소수 인종 의사의 경우 의료 기반이 부족한 지역이나 1차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비율이 높아 의료 격차를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UC 데이비스 의대 입학처장을 맡고 있는 마크 헨더슨 박사는 "대부분의 부유한 아이들은 의대에 진학할 수 있다"며 "의대생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경제적 격차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UC 데이비스는 역경 평가를 통해 의대생들 사이에 다양성을 상당 부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에 입학한 신입생 133명 중 14%가 흑인, 30%는 히스패닉계였다. 전국적으로 의대생 10%가 흑인, 12%가 히스패닉인 것에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UC 데이비스는 의대 입학생의 84%가량이 불리한 환경에서 진학했고, 전체의 42%는 가족 중에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역경 평가를 도입한 이후 소수인종 등 대표성이 낮은 그룹 출신의 의대생 비율은 10.7%에서 15.3%로, 경제적으로 불리한 환경의 학생은 4.6%에서 14.5%로 뛰었다.
반면 입학생들의 의과대학원 입학시험 MCAT 평균 점수는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 헨더슨 박사의 설명이다.
하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역경 점수'가 시험 성적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반발도 만만찮다.
또 사회경제적 요소를 대입 평가요소로 등급화하는 것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도 있다고 NYT는 언급했다. 위헌 결정 당시 존 로버츠 대법관이 제시한 다수의견을 보면 인종을 입시에 우대하기 위한 '대리적 방식'(proxies)도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명시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비영리단체 태평양법률재단은 앞서 버지니아주에 있는 토머스제퍼슨 과학고가 '경제적 요인'을 인종 분류의 대안으로 사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재단의 조슈아 톰슨 변호사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대법원은 직접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은 간접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한편 CNN 방송은 이날 분석 기사를 통해 "지난해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었던 때와 달리, 이번 대법원 판결은 대중으로부터 별다른 반발을 불러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73년 낙태권을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폭스뉴스 여론조사를 보면 작년 5월 판례 번복 직전까지도 유권자의 63%가 낙태권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대한 여론은 매우 큰 온도차를 보인다. 지난달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 결과 미국인의 절반이 '어퍼머티브 액션'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은 33%에 불과했다.
또한 아시아계 등이 이 정책으로 역차별을 받아왔다는 지적도 컸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에 제동을 거는가 하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게 상업적 서비스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는 등 최근 일련의 대법원 판단 역시 여론의 분위기상 후폭풍에 시달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CNN은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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