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밤 연속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방화·약탈…3천300명 이상 체포
"프랑스 정부, 체계적인 인종차별 인정하고 편견 해소방안 마련해야"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프랑스 경찰관이 교통 검문에 걸린 알제리계 10대 소년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총으로 쏴 즉사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한 지 3일(현지시간)로 일주일이 됐다.
지난 금요일부터 주말 사이 최고조에 달했던 폭력 시위는 피해자 나엘(17)군의 장례식이 끝나고 그의 할머니 등 많은 사람이 자제를 호소하면서 눈에 띄게 잦아들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이번 사태가 인종 갈등과 불평등, 빈곤, 불공정한 법집행 등 오랫동안 누적돼온 사회적 병폐가 한꺼번에 곪아 터진 결과라는 자성이 일고 있다.
나엘 군이 파리 외곽 낭테르에서 숨진 지난달 27일 밤부터 엿새 연속으로 전국 곳곳의 주요 도시 경찰서와 시청 등 공공기관을 겨냥한 공격이 잇달았고, 상점들을 노린 약탈과 길거리에서 이유 없는 방화도 비일비재했다.
나엘 군의 사망에 분노한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자동차, 쓰레기통 등에 불을 지르거나, 창문을 깨뜨리면서 분풀이하는 식이었고, 시위를 조직해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유족이 참여한 추모 행진 외에는 없었다.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유에서는 총기 매장에서 총을 훔쳐 갔고, 파리 남쪽에 있는 라이레로스 시장의 자택으로 인화성 물질을 실은 자동차를 돌진시켜 불을 지르는 등 폭력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지난 엿새간 경찰이 체포한 사람은 3천354명으로 이 중 60%는 전과가 없었으며 경찰이 주시하는 요주의 인물도 아니었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체포한 사람의 평균 연령이 17세라고 밝혔다.
자동차 5천600여대와 쓰레기통 11만100여개, 건물 1천채가 불에 타거나 망가졌다. 공격당한 경찰서는 250곳이 넘고 시청은 99곳이 망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구청의 피해 규모는 여전히 조사하고 있다.
피해는 6월 29∼30일, 6월 30일∼7월 1일로 넘어가는 밤에 가장 컸다. 이틀 동안 경찰은 2천186명을 체포했고, 자동차 3천504대가 불탔으며, 경찰관 168명이 다쳤다고 내무부가 집계했다.
경찰이 체포한 인원을 보면 지난달 29∼30일 1천300명 이상이 붙잡혀 정점을 찍고 그다음 날부터 700명대, 100명대로 숫자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달 들어 전국에 경찰과 군경찰 4만5천명을 배치하고, 경장갑차와 대테러 특수부대원을 동원해가며 대응했고, 킬리안 음바페 등 유명 인사들과 나엘 군의 조모가 나서 폭력을 멈춰달라 호소했다.
나엘 군의 사망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설명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규탄했으나, 폭동이 이어지자 국가 기관을 겨냥한 폭력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나엘 군의 사망 사건이 이렇게 프랑스를 뒤흔든 배경에는 프랑스 경찰 조직에 오랫동안 인종차별적 법 집행 관행이 차곡차곡 쌓여왔고, 이에 대한 불만이 곪다가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권 단체들은 만약 경찰이 교통 법규를 위반한 차를 멈춰 세웠을 때 아랍계로 보이는 나엘 군이 아니라 부유해 보이는 백인 남성이었다면 운전석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을 리가 만무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권리침해를 감시하는 권리보호관이 지난 2017년 "흑인 또는 아랍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경찰에게 신분 확인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20배 높다"고 발표한 보고서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권리보호관은 2016년 프랑스 본토에서 5천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8∼25세가 다른 연령대보다 7배, 흑인 또는 아랍인 남성이 다른 인종보다 5배 자주 신분 확인을 요구받았다고 답했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나엘 군의 사망은 18년 전 파리 외곽에서 흑인 소년 2명이 경찰을 피해 변전소에 숨었다가 감전사한 사건을 떠올리게 해 인종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2005년 10월 클리시수부아에서 지예드 베나(17) 군과 부나 트라오레(15) 군이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주변에서 절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쫓기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두 달 동안 파리 외곽에서 폭동이 벌어졌고, 두 달 동안 건물 300여채와 자동차 1만대가 불타는 등 소요 사태가 이어지자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조사 결과 절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던 베나 군과 트라오레 군의 뒤를 쫓은 경찰관 2명은 구조 의무를 소홀히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미국 뉴욕 스토니브룩대학교 크리스탈 마리 플레밍 교수는 "나엘의 죽음은 마크롱 대통령의 말마따나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체계적인 인종차별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사회학과 아프리카학을 전공하는 플레밍 교수는 알자지라 방송에 기고한 글에서 "프랑스 경찰에 희생당한 사람이 대부분 흑인 또는 아랍인이지만 당국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저지르는 폭력을 부인하는 익숙한 순환을 넘어 체계적인 인종차별을 솔직히 인정하고 차별과 편견을 해소할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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