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첨단반도체 압박에 반격 vs 中 핵심광물 장악 우려 부각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이 8월 1일부터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나선 건 다분히 미국과 서방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을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중국의 첨단 반도체 산업 굴기를 차단하겠다는 압박에 그냥 당하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배어 있어 보인다.
중국이 첨단 반도체 핵심 소재인 갈륨·게르마늄 생산·공급을 사실상 장악한 걸 이용해 미국과 서방에 반격 의지를 분명히 한 형국이다.
가깝게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중국 방문(6∼9일)을, 멀게는 '반도체 굴기'를 염두에 두는 듯하다.
일각에선 중국이 다른 희귀금속 공급 통제 카드도 조만간 내놓을 것으로 본다.
◇ 갈륨·게르마늄 용도는…관련 산업에 파장 작지 않을 듯
두 금속은 칩 제조, 통신과 군사 장비용 반도체에 두루 쓰인다.
은빛 금속인 갈륨은 전송 속도와 효율을 높이기 위한 화합물 반도체, TV와 휴대전화 충전기, 태양광 패널, 레이더, 전기차에 주로 사용된다. 특히 갈륨비소(비소화합물)는 실리콘보다 열과 습기에 강하고 전도성이 높아 고성능 반도체 소재로 선호된다.
광택이 나는 회백색 금속인 게르마늄은 광섬유 통신, 야간 투시경, 인공위성용 태양전지의 핵심 소재다. 일반적으로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지 않으며, 아연·알루미늄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소량 생산된다.
문제는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생산·공급을 사실상 독점한다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연합(EU)의 연구를 인용해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세계 공급량의 각각 94%, 83%를 차지한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3일 중국 상무부는 수출통제법, 대외무역법, 세관법 등 규정에 따라 갈륨과 게르마늄 등 30개 품목에 대해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도록 하되 수출 통제 대상은 현재로선 특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그러면서도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한 조치라고 강조하면서, 수출 신청은 행정부 격인 국무원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갈륨·게르마늄의 용도를 볼 때 중국의 수출 통제가 본격화하면 관련 분야 산업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 자명해 보인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수년 전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을 떠올리게 한다. 희토류 생산과 공급을 장악했던 중국이 이를 무기로 국제사회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4년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희토류·텅스텐·몰리브덴에 대한 중국의 수출 제한이 국제 무역 규칙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끌어낸 바 있다.
외교가에선 중국을 전 산업 분야에서 배제하는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을 시도해온 미국이 유럽 등의 이견을 고려해 디리스킹으로 대응 강도를 낮췄는데도, 이에 맞서기 위해 이번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옐런 美 재무 방중서 가닥 잡힐까…中 '반도체 굴기' 향배는
외신은 중국이 옐런 미 재무장관의 중국 방문 직전에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낸 데 주목한다.
이를 두고선 지난달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양국 갈등과 대립이 일단 '봉합'된 상황에서 옐런 장관의 방중을 통해 본격적으로 경제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미국의 디리스킹에 대한 태도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다시 말해 서방의 협조를 등에 업은 미국이 디리스킹으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자 중국 역시 반도체 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며 맞서고 있다.
앞서 미국은 2019년 5월부터 중국의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의 대명사인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겨냥해 5G용 반도체 칩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고, 이젠 4G용 반도체 수출도 차단할 기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작년 8월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모두 2천800억 달러(약 368조원)를 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반도체법(CHIPS Act)에 서명했으며, 이 법을 통해 투자 대상에서 중국을 철저히 배제했다.
이어 미국은 작년 10월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중단한 데 이어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니콘 등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수출 통제에 동참하도록 조치했다.
여기에 한국·대만·일본과 함께 중국을 뺀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인 '칩4'를 주도하고 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지난 5월 21일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의 제품이 심각한 보안 위험을 초래한다며 관련 제품 구매를 중지시킨 데 이어 이번에 갈륨·게르마늄 통제라는 공세적 조치를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이 이처럼 자국 시장의 거대한 규모와 첨단 반도체용 핵심 희귀금속 공급권을 반격 카드로 삼았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향후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중국 공세 효과는…국제사회, 中 핵심광물 장악 우려 더 커질 듯
현재로선 바이든 미 행정부의 반응이 주목된다. 그러나 전날 중국 상무부의 발표에 미 상무부는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 몇 년 새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미국·서방 대 중국·러시아' 구도의 신냉전 심화 우려가 커진 탓에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해 중국과 대화에 나서고 있지만, 기존 대중 정책의 핵심인 디리스킹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내에선 중국이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할 목적으로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미·중 간 주요 논의 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 행정부는 중국과 논의와는 별도로 단기적으론 중국 이외의 다른 공급처에서 갈륨·게르마늄 확보에 나서고,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을 포함해 안정적인 확보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국의 저가 공세 탓에 갈륨·게르마늄 생산을 줄였던 다른 국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추가 생산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생산·공급이 안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으로선 희토류·리튬에 이어 갈륨·게르마늄까지 희귀 광물·금속의 생산·공급을 맘대로 조절하는 '경제적 강압' 국가로 부각될 수 있음을 우려해야 할 처지가 됐다. 자칫 국제사회 여론이 '반(反)중국'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핵심광물 공급 능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강압을 한다고 걱정해온 영국과 인도는 물론 유럽연합(EU)까지 중국에서 더 멀어질 수 있다.
kji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