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이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별 교류가 없습니다. 해가 뜨면 각자 나가는데 밤이 돼도 일하느라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중국 산시성 시안 시내 캡슐 호텔에 사는 중년 남성 린화(이하 모두 가명)는 3일 중국 매체 매일인물(每日人物)에 자신과 '이웃'들의 생활방식을 이렇게 소개했다.
28층에 위치한 30㎡짜리 공간에는 노란색 캡슐 20칸이 층층이 들어차 있다. 캡슐마다 있는 대나무 발이 방문 역할을 하고 내부엔 침대 하나만 있다. 우물을 가로로 연달아 파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장까지 높이가 120㎝에도 못 미쳐 방 안에서 서 있을 수도 없지만, 숙박비는 1박에 30위안(약 5천400원)으로 저렴하다.
이 캡슐호텔에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나 배달노동자, 인기 없는 인터넷방송 진행자(BJ), 임금이 낮은 교육·훈련 교사, 통상적으로 3개월 치 월세인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실업자가 살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2주 정도 캡슐호텔에서 묵은 린씨는 고향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 홀로 시안에 나와 있는 처지다. 가족과 전화할 때면 "괜찮다"고 하지만 버티는 일은 녹록지 않다.
다니던 엔지니어링 업체는 한 달 전에 그만뒀고, 두 달 치 임금이 밀려 더는 집다운 집에 살 수 없게 됐다. 사방으로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전문대학 졸업 학력 때문에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모아놨던 돈은 3년 전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사라졌으며 오히려 친구 대신 30만 위안(약 5천400만원)의 빚까지 떠안았다.
그런 린씨에게 하루 30위안짜리 캡슐호텔은 그나마 숨 쉴 공간이 됐다.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파트타임 일자리부터 시작해 지금은 캐비닛에 나사를 박는 일용직 일을 구해 하루 200위안(약 3만6천원)을 번다.
광둥성 선전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40세 남성 위셴은 수중에 돈이 없어 캡슐호텔을 선택했다. 게임을 하는 젊은 학생들로 시끌벅적한 공용공간을 지날 때는 고개를 푹 숙인다.
후베이성 우한의 한 바에서 일하는 20대 여성 모이팅은 여행객들 틈에서 자기 캡슐과 일터를 오간다. 숙박비를 아끼려는 관광객들과 달리 캡슐 침대에 걸터앉아 식은 음식을 먹는 그는 호텔에서 이례적인 존재가 될 때가 많다. "여행 온 사람이냐"며 함께 어울려 놀자는 인사를 받으면 난처해진다.
장기 거주자가 적지 않지만, 소방 문제 등 캡슐호텔 특유의 결함은 현실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이 매체는 지적했다.
30㎡의 공간에 캡슐 20개가 있다면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면적은 1.5㎡에 불과하다. 중국 대부분의 도시가 최소 거주 면적으로 규정한 5㎡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런 곳에서 불이 나면 인명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린씨는 언젠가 캡슐을 나갈 날을 꿈꾸고 있다. 빚을 갚아온 지난 3년 동안 고향에 있는 아내에게 모든 상황을 알렸지만, 캡슐에서 지낸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고 그는 전했다.
얼마 전 아내의 생일에 그는 특별히 시간을 내서 고향에 다녀왔다. 린씨는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고 케이크를 먹은 일을 떠올리며 "내년 아내 생일도 내가 챙겨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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