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美, 합리적·실용적 태도 취해야"…'정찰풍선' 갈등은 일단락 수순
미중 고위급 대화 탄력…존 케리 미 기후변화 특사 내주 방중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방중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8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만나 미·중이 공정하게 경쟁하면서도 상호 오해를 피하기 위해 긴밀히 '직접' 의사소통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옐런 장관은 중국 경제를 옭아매고 있는 미국의 첨단 기술 수출 제한 조치를 옹호했고, 중국 역시 광물 수출 통제 조치 등에서 전향적인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고 외신은 전했다.
상당 기간 단절됐던 소통을 재개할 필요성은 확인했지만 대치 상태를 풀 획기적인 돌파구는 나오지 않은 셈이다.
◇ 옐런 "정치적 논란 없는 경제 교류 영역 넓다…직접 소통하자"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옐런 장관은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허 부총리에게 작년 미국과 중국의 무역 기록을 언급하면서 "양국 정부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방식으로 양국 경제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넓다는 게 내 믿음"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 '디커플링'(decoupling·산업망과 공급망에서 특정국 배제) 등 중국을 세계시장에서 고립시키려는 언사가 심심치 않게 나온 것과 별개로 미중 양국의 무역 관계의 기초는 탄탄한 편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설명했다. 지난해 양국 무역액은 6천900억달러(약 895조9천억원)를 기록했다.
옐런 장관은 "우리는 신흥 시장과 개발도상국들의 부채 문제와 기후 문제 같은 중요한 지구적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며 "우리는 우리 각자의 경제와 다른 국가 모두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서로 동의하지 않는 점들뿐만 아니라 공통 이익의 영역들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그는 "복잡한 세계 경제 전망 속에서 세계 최대의 두 경제 대국이 긴밀히 의사소통하고 우리의 다양한 도전들에 관한 의견을 교환해야 하는 절실한 필요성이 있다"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양측 모두가 세계 경제 전망을 더 완전하게 이해하고, 우리의 경제를 강하게 만들 더 나은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옐런 장관은 미국은 승자독식 접근이 아니라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공정한 규칙에 기반을 둔 건전한 경쟁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전날 리창 국무원 총리를 만나 했던 언급이기도 하다.
그는 허 부총리에게 "우리는 특정한 경제 행위에 관한 우려들이 있으면 직접적으로 소통해야 하고,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 부총리는 "중국은 당신과 리창 총리 사이의 합의를 진정성 있게 이행할 것이며, 합의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것"이라고 답했다고 AFP는 전했다.
◇ 서로를 겨눈 기술·광물 수출 통제는 그대로…종전 입장 반복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고율 관세나 양국 경제·무역 관계의 현안인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등 쟁점에선 아직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AP통신은 옐런 장관이 전날 만난 '2인자' 리창 총리를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지만, 중국 측은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을 골치 아프게 하는 현재의 정책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신호를 주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옐런 장관 역시 전날과 이날 계속해서 미국의 첨단 기술 수출 억제 조치의 정당성을 변호했다. 시 주석은 올해 3월 미국의 이런 행보가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것이라며 비난한 바 있기도 하다.
이날 옐런 장관은 "미국은 우리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표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며 "우리가 이런 행동들에 서로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의견 불일치가 오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특히 의사소통 부족에서 나온 오해를 허용해선 안 된다. 이는 양국 간의 경제·금융 관계를 불필요하게 악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재무부 당국자들은 이번 방중의 목표가 의사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지, 대형 분쟁들에 관한 합의는 예정에 없으며 옐런 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일정도 없다고 전했다.
허리펑 부총리는 양국 정부가 작년 11월 발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달성한 합의로 복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허 부총리는 "양국은 역사와 인민,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며, 미국이 "합리적·실용적인 태도로 중국과 협력해 양국 정상의 공동인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中 "정찰풍선 문제 유감"…고위급 대화 탄력 유지될 듯
경제 문제는 아니지만, 최근 미중 관계 경색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혀온 '정찰풍선'(중국은 과학연구용 비행선이라고 주장) 사건은 봉합 수순에 들어갔다.
허 부총리는 이날 옐런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비행선과 같은 예상치 못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중미 관계, 특히 양국 정상의 공동인식 이행에 일부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이 유감"이라고 말했다고 APTN은 전했다.
지난 2월 중국 정찰풍선이 미국 영공을 침범했고 이를 미국이 전투기를 출격시켜 격추한 이후 미중 관계는 급격히 냉각된 바 있다.
그 무렵 중국을 방문하려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정찰풍선 사태를 이유로 방중을 무기한 연기했고, 고위급 소통도 한동안 단절되는 등 양국 관계는 악화했다.
그러나 지난달 블링컨 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난 데 이어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옐런 장관까지 베이징을 찾으면서 한동안 단절됐던 고위급 교류에 다시금 탄력이 붙었다.
이날 허 부총리의 유감 표명은 정찰풍선이라는 걸림돌을 옆으로 치움으로써 모처럼 터진 고위급 교류의 물꼬를 다시 막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AP통신은 존 케리 미 기후변화 특사가 옐런 장관 귀국 이후인 다음 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의 방중 가능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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