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일정 없이 '조건부 신속가입' 약속에 우크라 반발
미·독일 등 반대에 '가장 낮은 수준 공통분모' 메시지 그쳐
동유럽 동맹국들과 온도차 뚜렷…"미, 모든 행동에 '확전방지' 계산"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리투아니아에서 이틀 일정으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12일(현지시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가운데 이면에선 균열이 노출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스웨덴 신규 가입의 길을 트며 '영토'를 확장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의지를 재확인하는 등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속 빈 군대'라는 일각의 오명에서 벗어나 서방 동맹국들간 결속을 다지는 데 성공했으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 등을 두고는 견해차로 인해 동상이몽의 모습이 연출되면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정상회의 공동성명의 문구를 보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방안을 어떻게 기술할지와 관련해 회원국간에 일부 심각한 갈등이 불거진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나토 회원국에 요구되는 수준으로 정치와 국방, 경제 등을 개혁하는 절차인 '회원국 자격 행동 계획'(MAP·Membership Action Plan)을 면제해 패스트트랙을 밟을 수 있게 해주겠다면서도 구체적 시점 등을 밝히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대신 공동성명은 '동맹국들이 동의하고 조건이 충족될 때' 우크라이나에 가입 초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둘러싼 논란을 고려할 때 이번 정상회의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공통분모를 지닌 메시지'가 도출된 것은 놀랄 것이 없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측은 실망감을 드러냈고, 이에 일부 회원국 고위 당국자들이 공개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면서 한때 잡음이 일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1일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회원자격에 일정을 제시하지 않는 데 대해 "전례가 없고 터무니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초청하거나 회원국으로 만들 용의가 없는 듯 보인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러시아와의 협상 카드로 남겨둘 기회의 창이 열려 있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익명의 나토 회원국 당국자는 그의 이런 발언에 미국 대표단이 '격분'(furious)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귀띔했다. 12일에는 벤 월리스 영국 국방부 장관이 "우린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이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 지원에 좀 더 감사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다만 나토 동맹국들과 우크라이나는 정상회의가 끝나갈 무렵 서둘러 봉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11일 밤까지 나토-우크라이나 회의 불참 가능성을 시사했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 강도를 누그러뜨렸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관련해 상당한 온도차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온 동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적극적 목소리를 낸 반면, 미국과 독일 등은 시기상조라며 조심스러운 접근을 강조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와 서방의 전면 대결로 확전하지 않도록 우크라이나와 나토 간에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부가 취하는 모든 행동에는 우크라이나 국경 내부로 분쟁을 억제하고 핵전쟁으로 확전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계산이 들어 있다"면서 "이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가 나토의 공식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별 회원국이 조직한 것이라고 강조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나토 고위급 외교관도 "백악관은 나토가 치명적 원조(무기, 군수품, 군용 차량 등의 원조)와 관련되길 원치 않는다"면서 "이와 관련해선 동맹국마다 예민한 정도가 다르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며, 종전이 이뤄지더라도 자동으로 가입하게 되는 건 아니란 점을 명확히 하길 원했다고 WP는 짚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 개입이 제3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우크라이나에 나토 가입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여론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균형을 유지해 왔다.
우크라이나가 원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않더라도 이번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빈 손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저먼마셜펀드(GMF)의 미할 바라노프스키 바르샤바 지국장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이렇게 가까워진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나토가 2008년 우크라이나의 가입에 원칙적 동의를 했을 때는 독일과 프랑스의 반대 때문에 성사 가능성이 없었지만, 지금은 가입 시점과 방식이 문제일 뿐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받아들인다는데 모든 회원국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나토에 가입한 모든 구소련 국가들이 거쳐야 했던 MAP를 우크라이나에 면제하는 방안을 주도해 통과시켰고, 프랑스 등도 최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지지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비판 트윗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관련해 보다 구체적인 약속을 이끌어내려는 '막판 압박 시도'였을 수 있다고 짚었다.
BBC 방송은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패스트트랙을 통한 자동 가입과 관련해 전략적이고 신중한 접근을 선택했다"면서 "이는 젤렌스키 입장에서 각국의 국내 정치적 압박에 따른 영향이 서방 사회 내에서 가시화 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글로벌한 정치 환경을 규정지을 것이라는 외교적 현실에 대한 자각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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