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점령지 우크라 기업들 강탈…멜리토폴서만 300곳 장악"

입력 2023-07-13 16:28  

"러, 점령지 우크라 기업들 강탈…멜리토폴서만 300곳 장악"
美 WSJ 보도…"군인들 들이닥쳐 회사 점령한 뒤 강제 인수"
"우크라 위한 탄약 생산하던 회사, 러에 넘겨져 러군에 포탄 공급"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주 산업도시 멜리토폴을 장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3월.
이 도시에 있는 우크라이나 최대 과일 회사 '멜리토폴스카야 체레시냐'(멜리토폴 체리)에 한 무리의 장갑차량들이 들이닥쳤다.
얼굴을 모두 가린 복면을 하고 식별 표식이 없는 군복을 입은 채 차량에서 내린 군인들은 소총 개머리판으로 회사 경비원들을 폭행한 뒤 사무실로 난입해 서류들을 압수했다.
이들은 회사가 국유화됐고 러시아인이 새로운 소유주가 됐다고 밝혔고, 그해 6월 이 회사는 실제로 러시아 기업 등록부에 등재됐다.
이후 몇 달 동안 아조프해에 인접한 산업·물류 중심 도시 멜리토폴의 많은 기업이 멜리토폴스카야 체레시냐의 운명을 뒤따랐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점령지에서 다수의 현지 기업들이 러시아에 강제로 넘어갔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대기업들을 러시아에 우호적인 세력에 맡김으로써 점령지 통제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을 받고, 러시아인과 현지 조력자들이 전쟁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기업 강탈을 강행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은 멜리토폴 지역에서만 300개 이상의 사업체가 러시아에 강제 인수된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SBU는 특히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과 산하 군인들이 강제 기업 인수에 개입됐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기계 부품과 우크라이나군을 위한 탄약을 생산하던 '멜리토폴 트랙터 부품 공장'(MFASP)도 도시가 러시아군에 함락된 직후 무장 세력에 장악당했다.
MFASP의 전 소유주 아나톨리 쿠즈민은 무장한 남성들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지역 관리들이 회사에 몰려와 차량, 재고품, 심지어 새로 설치한 변기까지 약탈해 갔다고 회상했다.
MFASP는 이후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목재 사업과 금융업에 종사하는 러시아인 사업가 소유로 러시아 기업 등록부에 등재됐다.
이 기업은 현재 포탄을 생산해 러시아군에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인 사업가가 소유한 것으로 등록된 다른 멜리토폴 기업은 볼 베어링을 비롯한 부품을 러시아 방산업체에 공급하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이 확인했다.
한편 일부 우크라이나 기업인들은 러시아에 빼앗긴 사업체를 되찾기 위한 힘겨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들은 새로운 러시아 소유주를 상대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 등의 국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이전 고객들에게 소유주가 바뀐 사업체에서 제품을 구매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

cjyo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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