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제 개혁 고수로 상원 지지 획득 어려워…정국 '시계 제로'
(방콕=연합뉴스) 강종훈 특파원 = 태국 야권의 총리 후보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MFP) 대표가 13일 의회 투표에서 과반 지지 획득에 실패한 뒤 포기하지 않고 2차 투표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14일 방콕포스트와 외신 등에 따르면 피타 대표는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며 "아직 더 많은 표를 얻을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음 투표에서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상원 의원이 회의에 불참했으며 자기 뜻대로 투표하지 못했다"며 "많은 압력과 보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전날 상·하원 합동 투표에서 피타 대표는 단독 후보로 나섰으나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
상원 의원 249명, 하원 의원 500명 등 749명의 과반인 375표가 필요했지만, 324표에 그쳐 51표가 부족했다. 군부가 임명한 상원에서 13명만 피타 후보를 지지했다.
의회는 오는 19일과 20일 연이어 총리 선출 투표를 위한 회의를 열 예정이다. 다만 피타 대표가 계속 단독 후보로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5월 14일 총선에서 151석을 얻어 제1당에 오른 전진당은 프아타이당 등 야권 7개 정당과 연립정부 구성을 추진해왔다. 야권 연합은 피타 대표를 총리 후보로 내세웠다.
피타 후보에게 더 기회가 돌아갈 수 있지만, 같은 구도로 다시 투표를 진행해도 결과가 바뀔 확률은 낮다.
전문가들은 전진당이 추진하는 형법 112조 개정 공약을 철회하지 않은 한 과반 획득은 어렵다고 분석한다.
왕실모독죄로 불리는 형법 112조는 왕실 구성원이나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에 대한 부정적 묘사 등을 하는 경우 최고 징역 15년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전진당은 이 법이 오용될 소지가 있다며 개정을 추진해왔다.
국왕이 신성시돼온 태국에서 그동안 군주제 개혁은 금기로 여겨졌다. 전날 회의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전진당의 정책을 비난하며 피타 후보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피타 대표는 투표 후 "왕실모독죄 개정 추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이 문제를 의회에 설명할 좋은 기회였고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 구성이 '시계 제로' 상황에 놓이면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피타 대표가 졸업한 태국 명문 탐마삿대 학생회가 상원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발 여론도 일고 있다.
전진당 지지자들은 전날 투표가 진행된 국회 주변에 모여 집회를 열었으며, 추가 시위도 예고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태국 밧화 가치는 떨어지고 주식시장도 약세를 보이는 등 경제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피타 대표는 의원직이 박탈되거나 전진당이 해산될 수 있는 '사법 리스크'에도 직면해 있다.
정치권에서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 계열의 제2당 프아타이당이 전진당과 결별하고 보수 군부 진영과 손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동남아시아 담당자인 피터 멈퍼드는 "프아타이당을 포함하거나, 혹은 프아타이당이 중심이 되는 보수 정부가 들어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향후 몇 주간 태국의 사회적 불안이 고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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