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키이우 외곽 소도시에서 학살 자행…한달간 1천400여명 민간인 숨져
(이스탄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방문한 우크라이나 부차와 이르핀은 민간인을 상대로 벌인 러시아의 전쟁 범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이다.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국토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굳건히 싸우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의지와 용기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정부 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러시아는 수도 키이우 점령을 위한 전초기지로 키이우 외곽 도시인 부차와 이르핀을 선택하고 이들 도시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인구 4만명과 7만명의 소도시인 부차와 이르핀에 재앙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포격과 공습에 의한 민간인 희생은 시작이었을 뿐, 3월 초 이들 도시를 점령한 러시아군은 본격적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학살을 저질렀다.
러시아군은 가장 먼저 16~60세 남성들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해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살했다.
부차의 한 거리에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성들의 손을 묶고 벽에 일렬로 세운 뒤 총살한 장면이 목격됐다.
우크라이나 검시관 세르히 카플리쉬니는 "하루에 30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들 중 13구는 손이 묶이고 근거리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남성이었다"고 증언했다.
러시아군은 정보기관이 사전에 작성한 명단을 들고 집집마다 들이닥쳐 민간인들을 잡아들였다.
또한 숨어 있는 남성들을 찾아내기 위해 고문도 서슴지 않았고, 협조하지 않는 이들은 처형했다.
부차 주민 비탈리 시나딘은 "러시아군이 나를 철제 기둥에 묶어놓고 이틀간 구타했다"며 "그들은 마을에서 누가 군인이고 영토방위군 소속이냐고 추궁했다"고 말했다.
안전한 곳으로 탈출하려는 이들에게도 총격이 가해졌다.
부차 주민 올레나는 "물을 구하려 해도 총에 맞고, 집 밖에서 요리를 해도 총에 맞고, 거리를 뛰어도 총에 맞았다. 러시아인들은 갈수록 잔인해졌다"고 말했다.
살인뿐만 아니라 강도와 약탈,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성폭행 사례에 대한 증언도 잇따랐다.
올렉산드르 마르쿠신 이르핀 시장은 "러시아군이 남성들을 데려가고 가족을 찢어놨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총을 쐈다"며 "가장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장면은 그들이 전차로 사람을 뭉개고 지나간 것이다. 우리는 나중에 시신을 아스팔트에서 삽으로 떼어내야 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이들 도시를 약 한 달간 무법천지로 만든 채 키이우 공세를 벌이다 결국 실패하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월 말과 4월 초 이르핀과 부차가 우크라이나에 의해 해방된 후 러시아의 만행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부차에서만 410구의 시신이 거리와 인도, 집단 매장지에서 발견됐고, 이르핀에서도 전쟁범죄 수사팀이 290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들 도시 모두 격렬한 전투와 약탈로 인해 황폐해졌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 지역에서 9천여 건의 전쟁범죄가 발생해 어린이 37명을 포함해 1천40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4월 초 부차를 방문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은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계산된 학살"이라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들 도시를 '영웅 도시'로 지정하고, 러시아 만행의 현장인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저항의 상징으로 기리고 있다.
또한 러시아 침공군의 반인도적 만행과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도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를 표하기 위해 키이우를 방문하는 외국 정상들이 거의 빠짐없이 찾는 장소가 됐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국군의 범죄 행위를 부인하고 있으며, 각종 증언과 증거들을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연출 또는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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