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푸틴, 안팎 혼란 속에 기존 협약 파기 불사하는 '전투외교' 행보"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러시아가 시리아 반군 장악 지역 주민들에게 구호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유엔과의 합의를 종료하려 한다고 16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은 서방 관리들을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과 바그너그룹 용병의 반란 등 안팎의 혼란 속에서 유엔과의 협력을 끝낼 태세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앞서 지난 1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시리아 주민들에게 구호 물품을 공급하는 결의안 연장을 거부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은 1년 연장을, 러시아는 6개월 연장을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다 타협안인 9개월 연장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어 러시아가 제안한 6개월 연장안도 러시아와 중국만 찬성해 부결됐다.
유엔은 해당 결의안에 따라 2014년부터 튀르키예로부터 시리아 북서부로 육로를 통해 식료품, 기저귀, 담요 등 구호품을 전달하는 인도주의적 지원 임무를 수행해왔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은 반군 장악 지역으로의 구호품 전달이 정부 통제 아래 수도 다마스쿠스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러시아는 결의안 연장을 거부하면서 시리아 정부 측 주장을 유엔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해, 기존 결의안을 놓고 협상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고 WSJ은 전했다.
이 통로를 이용한 구호품 수송이 끊기면 2011년부터 12년간 이어진 내전과 지난 2월 발생한 강진으로 고통받는 반군 장악 지역 내 시리아 주민 400만명 이상이 피해를 보게 된다.
특히 서북부 이들리브주(州) 등에서 텐트촌에 살며 구호품에 의지해 살아가는 수십만명은 생명줄이 끊기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된다.
러시아는 유엔의 시리아 원조 공급선 차단 외에도 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을 철수시키도록 말리 군정에 압력을 넣고, 우크라이나 곡물 해상 수출길을 열어줬던 흑해 곡물 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최근 수주일간 '전투 외교' 행보를 하고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로, 이를 이용해 지난 수십년간 서방 국가들을 압박해왔다.
외교관들과 분석가들은 그러나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기서 더 나아가 시리아 원조 루트나 흑해 곡물협정과 같은 기존 합의들을 아예 파기하고자 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ICG)의 리처드 고원 유엔국장은 "러시아는 까칠한 태도로 협상하던 자세에서 전면적인 방해 운동으로 전환했다"고 짚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너태샤 홀 선임연구원도 "푸틴은 자신이 원한다면 세계를 불태워버릴 수 있음을 국제사회에 상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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