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미청산 조합 253곳…서울서 10년 넘게 청산 안한 조합도 14곳 달해
"소송 안 끝났다"…청산 미루고 조합임원 판공비·사무실 유지
정부·지자체 관리·감독 어려운 '사각지대'…"좀비 조합 없애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박초롱 기자 = 2010년 이후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입주가 끝났는데도 아직 청산하지 않고 운영되는 조합이 6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끝나면 조합은 남은 돈을 조합원들에게 돌려주고 청산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조합장과 임원들이 월급을 계속 받기 위해 소송을 빌미로 청산을 지연시킨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조합 해산 이후 '청산법인'이 되면 지방자치단체·국토교통부의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점을 악용한다는 지적이다.
◇ 서울 재건축·재개발 조합 14곳, 10년 넘게 '미청산'…관리·감독도 어려워
17일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이 국토부에서 제출받은 전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3월까지 해산한 전국 387개 재건축·재개발 조합 중 청산되지 않은 조합은 65.4%(253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 해산 후 5년 이상 청산이 지연되고 있는 조합은 전국 64곳에 이르렀다.
서울의 경우 해산한 193개 조합 중 청산이 완료된 곳은 25.5%(49개)뿐이었다.
미청산 조합 비율이 74.5%(143개)로 전국 평균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다. 조합 해산 후 10년 넘게 청산하지 않은 조합도 서울시에만 14곳 있었다.
이 중에는 재개발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곳도 있지만, 길음 7·8·9구역과 불광 6·7구역, 미아 6구역은 재개발을 마치고 2010∼2011년 입주가 이뤄진 곳이다.
강동구의 A재건축 조합은 2008년 입주해 청산절차를 마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현행법은 정비사업이 완료돼 입주가 끝나면 1년 이내에 조합장이 조합 해산을 위한 총회를 소집하고, 총회에서 청산인을 선임해 조합 사무를 종결해야 한다.
조합은 청산 작업을 통해 그간의 비용을 결산한 뒤 추가 이익을 조합원들과 나눈다. 때로는 추가 분담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미청산 조합은 청산인을 선임해놓고도 청산을 끝내지 못하고 조합 사무실과 임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곳들이다.
조합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산 수익금이 청산법인의 청산인(조합장)과 임원들의 월급으로 꼬박꼬박 들어간다.
물론 법적 분쟁 등이 이어져 청산하고 싶어도 못 하는 조합도 있다.
그러나 일부 조합에선 조합장 판공비와 사무실 등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을 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 문제는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대구에선 수성구 황금주공(황금캐슬골드파크) 재건축 조합장이 2006년 아파트 입주 이후 13년이 지났는데도 조합을 청산하지 않고 조합비 7억6천여만원을 월급으로 받아 유용한 혐의로 구속됐다.
2010년 입주한 부산 동래구 삼환나우빌 조합장은 6년간 조합을 청산하지 않고, 동래구를 상대로 부당이익반환 소송을 제기해 돌려받은 돈을 자신의 월급·차량 리스비 등으로 쓰다 덜미를 잡혔다. 이 조합장은 입주 이후 자신의 급여를 316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인상하기도 했다.
◇ 소송 앞세워 '좀비' 조합 유지…비용 날려 조합원들만 피해
청산을 늦추는 조합장이 주로 내세우는 것은 '소송'이다.
2016년 입주를 마친 서울 강동구 B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세금 정산과 상가 하자와 관련한 소송이 남았다며 청산을 미루고 있다.
이 아파트 조합원은 "임원들이 조합(청산법인)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몇몇 브로커들과 결탁해 '꼼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며 "그간 서울시에서 감사를 나와도 시에 법적 처분 권한이 없다 보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조합은 서울시 실태조사에서 시공 하자 및 세금 환급 소송을 청산이 미뤄지는 동안 조합장이 월 560만원의 급여와 10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받아 간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 임원의 과도한 인센티브와 퇴직금 인상 시도에 반발하는 조합원들의 민원 제기로 해당 안건이 삭제된 이후 총회가 개최된 사실도 드러났다.
조합은 지난해 3월 해산했으나 청산 절차는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당하게 청산절차를 밟지 않은 곳 중에는 조합 유지를 위해 억지 소송을 부추기는 변호사부터 법무사, 세무사, 공인회계사, 감정평가사까지 먹이사슬로 얽힌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청산 후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돈으로 부당이득을 챙김으로써 조합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조합 해산 이후에는 행정기관의 관리에서 벗어나 문제가 생겨도 처벌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조합이 해산되고 청산법인으로 넘어가면 재개발·재건축 주무 부처인 국토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 권한이 사라지고, 민법에 따라 법원이 청산 절차를 감독하게 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준공 후 1년이 지난 조합을 대상으로 청산 계획을 6개월마다 조사하기로 하는 등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다만 정당한 사유 없이 조합을 해산·청산하지 않는 조합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마련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김영호 의원은 "몇몇 조합장이 청산을 고의로 지연하며 많게는 40억원가량의 청산금을 수년간 마치 연금처럼 수령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하루빨리 법적 근거를 마련해 국토부와 지자체가 미청산 조합을 전수조사하고, 고의로 청산을 지연시키는 조합은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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