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장관·특사 냉대한 中, '비둘기파' 키신저는 환대

입력 2023-07-20 15:40  

바이든의 장관·특사 냉대한 中, '비둘기파' 키신저는 환대
외교·국방라인 1인자 이어 시진핑 주석까지도 직접 만나
해빙 상징성 내세우며 그간 잔소리 접고 짐짓 과장된 환영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52년 전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해 미·중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고 양국 수교의 초석을 놓은 인물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에서 이례적 환대를 받고 있다.
최근 만 100세를 맞은 키신저 전 장관은 지난 18일 베이징을 깜짝 방문해 중국 외교라인 1인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 등 주요 인사와 잇따라 회동했다.
20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키신저 전 장관을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만나 "우리는 오랜 친구를 절대 잊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외교계의 거두라지만 현직이 아닌 그를 최근 양국 관계 안정을 위해 방중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특사 등 현 정부 고위 관료보다 더욱 정중한 예우로 맞아들인 것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미 당국자들이 다양한 수준의 냉담함과 중국 측 카운터파트 혹은 국영 매체의 잔소리에 직면했던 것과 달리 키신저 도착 소식은 18일 저녁 갑자기 발표됐고 과장되게 환영받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는 왕 위원과 리 부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양측의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왕 위원은 "(키신저) 박사는 미중 관계의 해빙에 역사적 기여를 하고 두 나라 간의 이해를 증진하는 데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했다"면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키신저식의 외교적 지혜와 (리처드) 닉슨식의 정치적 용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에 키신저 전 장관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양측은 서로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면서 "상대방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중국 국방부는 리 부장을 만난 키신저 전 장관이 "중국의 친구로 여기에 왔다"고 밝히면서 "(미·중 양국이) 오해를 없애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대립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아직 왕 위원과 리 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와 관련해 별도의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 정부도 키신저 전 장관의 방중 계획을 알고 있었으나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것이며, 미 정부를 대신해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키신저 전 장관은 과거 중국 당국자들과 나눈 대화를 미 정부 당국자들과 공유한 적이 있다면서 이번에도 귀국 후 비슷한 자리가 마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키신저 전 장관이 언제까지 중국에 머물 계획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키신저 전 장관은 2019년에도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났고, 당시 시 주석은 그가 "앞으로도 여러 해 동안 건강을 누리고 중·미관계의 촉진자이자 기여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중국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우신보 중국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키신저 전 장관에 대한 중국 정부의 환대는 중국이 '오랜 친구'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준다면서 "키신저의 방중은 중미 관계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회담을 진행하자는 미국 측 제안에 퇴짜를 놓았던 리 부장이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난 건 현재로선 미·중 군사채널을 복구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실제, 중국 국방부는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난 리 부장이 중국과 타협하려 들지 않는 '미국 내 일부 인사'를 비판했다고 전했다.
그런 가운데 중국 관영 언론사들은 일제히 키신저 전 장관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 타임스는 올해 5월 키신저 전 장관이 100세 생일을 맞았을 당시에는 키신저 전 장관을 '전설적' 인물로 묘사하면서 "미·중 관계에 대해 여전히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위대한 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고 NYT는 덧붙였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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