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국방상 담화에서 '핵무기 사용조건' 해당 주장
美국방부 "北위험에 대한 신중대응" 일축…"일부러 간것이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북한은 지난해 9월 8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라는 11개 항의 법령을 채택했다.
2013년 2월 12일 제정한 '자위적 핵보유법'과 달리 지난해 법령은 북한의 핵 교리가 '억제에 기반한 핵'에서 '사용을 전제한 핵'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됐다.
법령에는 핵무기 운용의 목표와 수단, 지휘 통제 등의 계획도 보다 구체적으로 담겨있었다. 특기할 대목은 '핵무기 사용 5대 조건'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
5대 조건은 첫째 '(북한에 대한)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육무기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이고, 둘째 '국가지도부나 국가 핵 무력 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셋째 조건은 '국가의 중요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넷째는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그리고 다섯째로는 '기타 국가의 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가 발생해 핵무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로 명시했다.
사용조건을 엄밀하게 보면 매우 포괄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 가능하게 돼 있으며, 이를 토대로 사실상 자위용뿐 아니라 '선제 핵무기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핵무기 사용 5대 조건'이 다시 부각된 것은 북한이 20일 미국의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의 부산 기항을 놓고 '사용 조건'에 해당한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강순남 북한 국방상은 담화를 통해 "국가에 대한 핵무기 공격이 감행되었거나 사용이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 필요한 행동 절차 진행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5대 조건 중 첫째와 셋째 조건 등과 연관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켄터키함은 사거리 1만3천㎞에 달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20여기가 실려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위력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1천 배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켄터키함의 부산 기항은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워싱턴 선언'에 따라 전략자산 전개의 가시성 증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아울러 한미 양국은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지난 12일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를 서울서 개최했고, 이에 맞춰 켄터키함의 부산 기항이 이뤄진 것이다.
결국 강 국방상의 담화는 북한이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의 가시성 증대에 얼마나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북한이 지난해 채택한 '핵무력 정책법'에서 규정한 핵무기 사용조건이 그들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적용될 수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미국까지 사거리에 둘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 도발을 이어가는 한편 한국에 대한 핵 위협을 노골적으로 가할 수 있는 법리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당연히 한국과 미국 당국은 북한의 이런 자의적이고 도발적인 태도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간) 북한 국방상 담화에 대한 입장을 질의한 연합뉴스에 "한미동맹이 워싱턴선언과 NCG를 통해 한 조치들은 북한의 위험하며 긴장을 고조하는 행동에 대한 신중한 대응(prudent response)이며, 역내 평화와 안정의 촉진이라는 한미동맹의 목표를 진전시킨다"고 말했다.
북한의 주장을 일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북한의 불법적인 핵·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해 지속적이고 강력하게 확장억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브리나 싱 국방부 부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을 일부러 자극하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다.
잇따른 북한의 고도화된 도발과 한미 양국의 강력한 대응, 그리고 미중 패권경쟁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당분간 한반도 주변 정세의 긴장도는 높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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