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객 극소수 역·노선 잇따라 폐쇄…신칸센·관광열차는 확장일로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일본 주요 4개 섬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는 홋카이도의 밧카이(拔海)역. 내년 6월이면 건립 100주년을 맞는 이 역은 홋카이도에서도 북단의 도시인 왓카나이(稚內)에 있다.
홋카이도 중심 도시인 삿포로에서 왓카나이까지 열차로 가려면 5시간 30분 가까이 걸린다. 승용차로 갈 때 소요되는 시간과 별 차이가 없다. 게다가 직행열차는 없고, 홋카이도 제2의 도시인 아사히카와에서 갈아타야 한다.
밧카이역은 종점인 왓카나이역의 전전 역이다. 일본에서 역무원이 없이 운영되는 무인역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고,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되기도 했다. 그래서 '북단의 비경역'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철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으로 인기를 누렸다.
이름도 생경한 밧카이역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2025년 봄이면 이 역의 운영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밧카이역은 이미 여러 차례 기사회생했다. 홋카이도 지역 철도를 운영하는 JR홋카이도는 2019년 밧카이역을 없애겠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이에 왓카나이시가 2021년도부터 연간 100만엔(약 910만원)을 들여 관리해 왔으나, 이 같은 방침을 바꿔 2025년도에 역을 폐쇄하겠다고 지난 14일 지역 주민들에게 전했다.
지역 주민들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반발했으나, 왓카나이시는 밧카이역이 교통수단으로서는 물론 관광자원으로서도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어 역이 폐쇄될 가능성이 크다.
밧카이역이 한 세기 만에 사라질 운명으로 내몰린 배경에는 인구 감소가 있다.
왓카나이는 행정 단위가 시(市)이기는 하지만, 인구가 3만1천여 명에 불과하다. 1975년에 5만5천 명을 넘었던 인구가 약 50년 만에 56% 수준으로 줄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밧카이역의 승차 인원은 하루 평균 2명에 불과했다.
철도 노선이 많고 철도를 각별히 사랑하는 이들도 많아 이른바 '철도 왕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에서 폐역은 이제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자가용 승용차를 보유한 가정이 늘어나고 전체 인구는 감소하면서 기차역뿐만 아니라 노선 일부가 폐지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일본에서 운행이 중단된 구간은 46개이고, 전체 길이는 1천193.6㎞에 달한다. 올해도 4월에 홋카이도 이시카리누마타(石狩沼田)역과 루모이(留萌)역을 잇는 35.7㎞ 구간의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일본에서 열차가 다니지 않는 기찻길과 역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는 1㎞당 하루 평균 승객이 1천 명 미만인 구간은 폐지 검토 대상으로 보고 있는데, JR동일본은 지난 연도를 기준으로 203개 구간 중 55개가 이에 해당했다고 지난 7일 발표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철도가 무작정 후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고속열차인 신칸센은 계속해서 노선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23일 규슈 서부 나가사키시에서 사가현 다케오 온천까지 66㎞를 연결하는 니시큐슈(西九州) 신칸센이 개통됐다.
신칸센에 새로운 노선이 생긴 것은 2016년 3월 혼슈 북부 아오모리와 홋카이도 남부 호쿠토 간 노선이 운행을 개시한 이후 6년여 만이다.
여기에 내년 봄에는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와 후쿠이현 쓰루가를 잇는 125㎞ 구간이 개통될 예정이다.
2012년 6월 착공해 12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되는 이 노선이 운행을 시작하면 도쿄에서 후쿠이까지 3시간 안에 갈 수 있게 된다.
일본은 호쿠토에서 삿포로로 향하는 신칸센 노선을 건설 중이고, 장기적으로는 쓰루가와 오사카 사이에도 신칸센 철로를 놓을 예정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신칸센뿐만 아니라 열차에 탑승한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관광열차도 각지에 도입되고 있다.
JR규슈는 내년 봄에 규슈 최대 도시인 후쿠오카와 온천으로 유명한 오이타현 벳푸를 오가는 새로운 관광열차를 운행하기로 했다. 탑승객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면서 지역 식재료로 만든 도시락을 맛볼 수 있다.
지난해 철도 개통 150주년을 맞이한 일본은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승객이 적은 일반 열차 노선은 버리고, 신칸센과 관광열차 등은 살리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한 듯하다.
일본의 이러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사회 변화와 철도 발전사를 겪었다는 점에서 일본 철도의 미래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자 한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