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블로거 구속…"용병반란에 권위 떨어지자 탄압 결단"
마지막 언로 봉쇄되나…국수주의자들 "시작에 불과" 위기감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지난달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으로 자존심을 구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철권통치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민족주의 성향 군사블로거 이고르 기르킨이 러시아 당국에 체포된 것과 관련해 "크렘린이 수년간 서구 성향 지도자들을 억누른 후 민족주의자들과 군사 지도자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난달 하순 무장단체 수장 예게니 프리고진이 주도한 반란이 끝난 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대담해진 우파 비평가들을 탄압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덧붙였다.
기르킨의 부인은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자신의 남편이 구금됐다고 밝혔고 기르킨의 변호사는 그가 체포된 뒤 자택에 대한 수색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러시아 법원은 이날 다음 공판이 열릴 9월 18일까지 기르킨을 구금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기르킨은 징역 5년형에 처할 수 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간부를 지낸 기르킨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할 때 큰 공을 세웠고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친러 반군을 조직했다.
지금은 군사블러거로 활동하며 러시아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면서도 러시아 정부가 전쟁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비판해 왔다.
WSJ은 기르킨이 푸틴 대통령을 비판해왔지만 최근 논평이 선을 넘은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기르킨은 지난 18일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임기를 연장한다면 러시아 국민들은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며 정권 이양을 촉구하고 푸틴 대통령을 "쓸모없는 겁쟁이"라고 비난했다.
기르킨의 표현 수위가 센 편이지만 그동안 전쟁지지 평론가들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통제가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 이후 러시아군 명예훼손 방지법 등으로 군대 비판을 엄격하게 단속하면서도 전쟁지지 평론가들은 사실상 열외였다.
BBC는 "이 전쟁블로거(기르킨)는 오랫동안 자유롭게 대통령과 군부를 비판하는 것이 허용됐다"며 러시아 수사당국이 이 시점에서 그를 인터넷을 통한 '극단적 활동' 촉구 혐의로 기소한 이유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기르킨이 체포되자 러시아 민족주의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위기감이 커졌다.
WSJ에 따르면 기르킨과 함께 민족주의 단체 '성난 애국자 클럽'(Club of Angry Patriots)을 만든 파벨 구바레프는 "기르킨이 (전쟁의) 아주 초기부터 국방부의 행위를 제대로 비판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족주의 활동가 게오르기 표도로프는 기르킨의 체포에 대해 '더 광범위한 탄압의 조짐'이라며 우려했다.
표도로프는 "우리는 단결해 스트렐코프(기르킨의 가명)를 지지해야 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기르킨의 체포는 지난달 24일 바그너그룹의 반란 후 러시아 정부가 군부 숙청 등으로 내부 단속을 강화한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스트롱맨' 이미지에 흠집이 난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WSJ은 바그너그룹 반란 여파로 구속돼 조사받은 러시아 고위 장교가 최소 13명이라고 보도했다.
숙청 대상에는 러시아군의 2인자인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 항공우주군 총사령관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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