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주, 중학교 교육과정에 '노예가 배운 유용한 기술' 포함
민권단체 등 "노예제 미화" 반발…흑인 아버지 둔 부통령도 비판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노예들이 경우에 따라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들을 어떻게 익힐 수 있었는지를 교육에 포함하라"
미국 플로리다주 교육위원회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승인한 2023년 중학교 사회학 교육과정에서 '흑인 역사' 교육에 포함하라고 안내한 내용이다.
수백만 흑인의 자유를 뺏어 경제 도구로 상품화한 노예제를 미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최근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플로리다는 공화당 대선 주자인 론 디샌티스가 주지사로 있어 논란이 더 확산하는 형국이다.
당장 자메이카 출신 흑인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를 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직접 나서서 "우리의 완전한 역사를 지우고 진실을 검열하려는 플로리다의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비판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교육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면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어떤 사람(노예)들은 대장장이였던 경험을 결국 나중 인생에서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을 (교육과정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 같다"며 "이 모든 것은 그게 무엇이든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답했다.
교육과정 제정에 참여한 전문가 두 명도 성명에서 "노예들을 오로지 탄압받는 희생자로 축소하려는 모든 시도"에 반발하면서 흑인 교육자로 잘 알려진 부커 T. 워싱턴을 비롯해 대장장이, 제화공, 재단사 등 '전문직'으로 종사한 노예 출신 흑인 16명의 사례를 제시했다.
그러나 민권단체와 교육계에서는 플로리다의 교육과정이 운이 좋았던 극소수의 사례를 부각해 노예제의 참혹한 현실을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또 노예 절대다수는 교육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고, 노예주가 자신의 경제적 이익 때문이지 노예를 위해 기술을 가르친 게 아니라는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미국 언론은 최근 몇 년간 인종과 역사 문제가 정쟁 소재가 되면서 이를 둘러싼 '문화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디샌티스 주지사를 비롯한 우익 성향의 정치인들은 유색인종과 성소수자 등의 권리 확대 시도를 보수 전통에 위협이 되는 과한 진보적 가치와 정체성을 강요하는 '워크'(woke)라고 비난하면서 이를 보수 지지층 결집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미국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유는 역사 문제가 한국에서도 자주 갈등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흑인이 노예로 있으면서 유용한 기술을 배웠다는 시각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 덕분에 경제적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떠올리게 한다.
플로리다의 교육과정과 식민지 근대화론 둘 다 사안의 전체 맥락과 가해자(노예주, 일본)의 수탈 의도를 무시하고 다수인 피해자의 아픔에 둔감하다는 맹점이 있다.
일부 조선인 노동자가 자유의지로 일본행을 택했으니 강제징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본과 이에 동조하는 일부 역사학자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어느 나라든 극복하기 참 어려운 문제인 듯하다.
미국과 한국 사회 모두 정파적 입장을 떠나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당사자 간 화해를 통해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역사 인식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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