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매체 "중국서 드문, 여성 인권에 대한 공개토론의 장 제공"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할리우드 영화 '바비'가 중국에서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를 재점화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31일 보도했다.
지난 21일 중국에서 개봉한 '바비'의 극장 매출은 28일 현재 1억4천만 위안(약 250억원)으로 방역 해제 후 다시 활기를 얻고 있는 중국 극장가에서 그다지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엄격한 외화 쿼터와 검열을 통과해 현지 극장에 걸린 '바비'를 둘러싼 논의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그 중심에는 극중 해로운 남성성에 대한 묘사와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가 놓여 있다.
이는 여성 인권에 대한 중국 사회의 낮은 관심이나 관용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SCMP는 짚었다.
특히 '바비'는 시진핑 체제 아래 중국 최고지도부에서 여성이 사라지며 중국의 성평등이 퇴보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개봉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인 중앙정치국(총 24명)은 25년 만에 처음으로 전원 남성으로 꾸려졌다.
중앙정치국에는 1987∼1997년을 제외하고 항상 최소 1명의 여성 위원을 둔다는 불문율이 유지됐지만, 시 주석의 1인 체제가 공고화된 20기 중앙정치국에서 이는 깨져버렸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도 이에 주목하며 지난 5월 중국 내 여성 인권에 대한 보고서에서 "최고지도부에 여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북미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바비'는 인형들만의 세계인 '바비랜드'를 떠난 바비(마고 로비 분)가 인간 세상으로 나오며 겪는 일을 그린 작품으로, 남성 중심 사회와 성차별에 대한 풍자를 전면에 내세웠다.
소셜미디어 웨이보의 한 누리꾼은 "'바비'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중국 정치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페미니스트의 행동으로 이끌 핑크를 사랑하는 바비 캐릭터로 논의가 귀결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여성들은 극장에서 '바비'를 보던 남성 관객들이 극중 해로운 남성성을 비판하는 대화에 짜증을 내며 도중에 상영관을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글을 올렸다.
중국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스포츠 사이트 후푸에서는 3천500여명이 참여한 '바비' 평점이 10점 만점에 5.6점이다.
반면 지난 27일 현재 인기 영화 사이트 더우반에서는 28만여명이 참여한 '바비' 평점이 10점 만점에 8.5점으로, 동시간대 영화 중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더우반에 올라온 "중국 여성들이 순전히 여성의 시선을 가진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것"이라는 글에는 2만5천여개의 '좋아요'가 달렸다.
일부 중국 페미니스트들은 '바비'가 중국에서는 드문, 여성 인권과 젠더 문제에 대한 공개 토론의 장을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중국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 선구자로 불리는 방송 작가 저우샤오쉬안은 SCMP에 "모든 소녀가 친구와 함께 극장에 가서 '바비'에 대해 논할 수 있다"며 "'바비'는 온전히 페미니즘에 관한 영화가 아니지만 중국에서는 매우 의미가 있다. 모든 극장이 페미니즘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와 많은 내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바비' 덕분에 다시 뭉쳤다"며 "극장에 가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합법적 활동"이라고 덧붙였다.
저우샤오쉬안은 2014년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유명 진행자 주쥔이 강제로 입맞춤을 했다는 사실을 2018년 폭로하고 그를 고소해 유명해졌다.
그러나 법원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2021년 9월 사건을 기각했다. 이후 그와 지지자들의 웨이보 계정은 삭제되거나 정지됐다.
중국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 장즈치는 '바비'의 가치가 내용보다는 폭넓은 계층의 관객에 닿을 수 있는 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더 통찰력 있고 선구적인 영화들이 있지만 그 영화들은 일반 관객을 위한 상업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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