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누락 사태로 감리 부실 드러나…LH '전관예우'는 감리 무력화
'옥상옥' 비판도…"별도 감독기구는 소모적…감리 책임 더 확실히 물어야"
(세종·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김치연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의 철근 누락 사태로 감리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파트의 시공 부실 문제가 끊이지 않는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그중에서도 설계도서대로 시공되는지 확인하고 품질·공사·안전관리 등을 지도·감독하는 감리 행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 근본적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감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감독하는 별도 기구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저가 입찰과 전관예우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둔다면 이 또한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업계와 국토부에 따르면 국토부는 감리 기능 강화를 위해 별도의 감독기구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감리를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두겠다는 것이다.
감독 기구를 중앙에 둘지 혹은 지방자치단체에 둘지 등 세부 방안은 논의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감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공공 공사의 경우 발주청의 감리 감독 권한을 확대하고, 민간 공사는 감리가 제대로 됐는지 점검할 제3의 기관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국토부는 감리 때 건축구조기술사와 협력하는 범위를 확대하도록 주택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주택법상으로는 감리자가 건축구조기술사와 의무적으로 협력하도록 하는 경우는 수직증축형 리모델링에 한정돼 있는데, 이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구조기술사와 협력을 통해 설계도서 검토 등 구조적인 문제를 잡아내는 구조 감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부실 감리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놔둔 채로 별도 기구를 만들어 감리를 감독하겠다는 발상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한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별도 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로, 옥상옥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감리자 책임을 더 확실히 묻고 감리 권한과 보수도 충분히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현장에서 저가 입찰이 만연하다 보니 중요한 안전 부분에 대해 비용 지불을 기피하려는 경우가 많다"며 "감리 단가가 낮게 책정돼 감리자 연봉이 낮아 인력 풀이 충분하지 않고, 숙련되지 않은 인력이 현장에 배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LH 전관예우 문제도 고쳐야 할 고질병이다.
공공 건설의 경우 LH 등 발주처가 감리회사를 선정한다. 그러다 보니 감리업체들이 영업을 위해 LH 전관을 영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LH 발주 공사의 경우 감리업체를 LH가 아닌 지자체 등이 선정하도록 해 전관예우를 끊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LH에서 근무한 2급 이상 퇴직자가 최근 5년간 재취업한 용역업체 중 LH와 계약이 이뤄진 업체는 9곳으로 조사됐다. 이들 업체가 LH와 2019년부터 올해까지 계약한 설계·감리 건수는 203건, 규모는 2천319억원에 달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감리는 별도 자격증이 필요해 인력 자체가 한정적"이라며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새로운 기구만 만든다면 그건 또 다른 전관 기구를 만드는 셈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감리는 공사 현장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하도급 업체처럼 제대로 된 권한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영세한 감리 업체들은 감리 전문성이 떨어지고 발주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원칙대로라면 현장에서 문제가 발견됐을 때 감리인이 공사를 중지시켜야 하지만 실제 감리인이 재시공이나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문제점에서 기인해 발주자의 감리 책임을 강화하는 건설안전특별법 개정안이 2020년 9월 발의됐지만 3년 가까이 계류 중이다.
감리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전관예우와 저가 입찰 관행을 뿌리 뽑는 한편 사각지대로 지목되는 설계상 감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철근 누락 LH 아파트 15개 단지 중 10개 단지는 구조 계산을 누락하거나 도면표현을 빠뜨리는 등 설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한건축사협회 박성준 부회장은 "한국의 감리 제도 중 가장 큰 문제는 감리가 시공 부문에 치우쳐 있고 설계상 감리가 취약하다는 점"이라며 "한국에서는 설계자가 설계 이후 공사 과정에 참여하지 못해, 이후 시공이 애초 설계와는 다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외국에서는 설계자가 감리 역할을 맡는 등 공사 전반적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며 "이런 제도 도입을 통해 한국도 설계 감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hopark@yna.co.kr, chi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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