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 망국' 경험에 시진핑 엄벌 드라이브…영국인·일본인·필리핀인 등도 집행
한국 정부 유감 표명…한중관계 영향은 크지 않을 듯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정성조 특파원 = 4일 중국 사법당국이 9년여만에 한국인 마약사범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것은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마약사범을 엄벌해온 그간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의 형법 제347조는 아편 1㎏ 이상이나 헤로인·메스암페타민 50g 이상, 기타 마약을 대량으로 밀수·판매·운송·제조한 사람을 15년의 유기징역이나 무기징역,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마약조직의 수괴는 물론 마약 밀수·판매·운송·제조를 무장 엄호하거나 당국의 조사·체포에 폭력으로 엄중히 저항한 경우, 국제 마약조직에 가담한 경우도 같은 기준으로 처벌한다.
한국의 양형기준으로는 영리 목적으로 마약류를 수출입·제조하거나 상습범인 경우 징역 7∼11년이, 가중 인자가 있으면 징역 9∼14년이 권고된다. 법률 문언에 적힌 법정형에는 무기징역이나 사형도 규정돼있지만 통상 선고는 양형기준 안에서 이뤄지므로 중국의 처벌이 상대적으로 더 엄한 편이다.
중국의 마약범죄 처벌이 무거울 뿐 아니라 실제 사형을 집행하기까지 하는 것은 19세기 영국이 들여온 마약 때문에 망국의 위기를 겪은 역사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설명이다.
중국 안팎에서는 유례 없는 반(反)부패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시진핑 체제에서 마약범죄 처벌이 더 엄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최고인민법원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중국 법원에서 1심 선고가 나온 마약 사건은 총 3만7천282건이었다.
판결이 확정돼 효력이 생긴 피고인은 모두 5만6천179명이었고, 이 가운데 5년 이상 징역, 무기징역,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만3천290명(23.66%)으로 전체 형사 사건과 비교해 중형률이 15%포인트 높았다. 올해 1∼5월의 중형률은 25.38%로 더 올랐다.
올해 3월 중국 매체들은 후난성 창사시 중급인민법원이 마약사범 29명에 대해 징역 6개월에서 사형에 이르는 판결을 각각 선고하고, 혐의가 무거운 2명에 대해서는 실제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보도했다.
6월에는 윈난성 루이리시에서 베이징으로 헤로인 등 마약류 20㎏을 운반한 혐의를 받은 중국인 33세 스(史)모씨가 최고인민법원의 집행 명령에 따라 사형됐다는 발표도 나왔다.
중국인에 비해 수가 적지만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마약사범 처벌 수위는 기본적으로 소지·유통한 마약의 양과 관련이 있지만, 통상 사형이 집행된 외국인은 1㎏ 이상의 마약을 소지·유통한 혐의를 받은 사람이었다.
중국은 2019년 캐나다 국적의 로버트 쉘렌버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2014년 필로폰 222㎏을 다롄에서 호주로 밀수하려던 혐의다. 이 판결은 2심에서도 유지돼 최종 확정된 상태다. 2020년 8월에도 캐나다 국적 마약 사범 예젠후이와 쉬웨이훙이 하루 차이를 두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외국인에 대한 사형 집행 사실이 중국 외부에 알려진 경우로는 2009년 영국인 1명, 2010년 일본인 4명, 2011년 필리핀인 4명, 2013년 필리핀인 1명, 2014년 파키스탄과 일본 국적자 1명 등이 있었다.
한국인의 경우 2001년 9월 신모씨를 비롯해 2014년 8월 김모씨와 백모씨, 같은 해 12월 김모씨가 마약 소지·유통 등 혐의로 중국에서 사형당했다. 마약 이외의 범죄로 범위를 넓히면 그간 중국에서 사형이 집행된 한국인은 모두 6명이었다.
2017년 범죄인인도 형식으로 한국에 송환된 이모씨는 당시 중국에서 필로폰 5㎏을 구해 한국에 보낸 혐의로 현지 공안에 붙잡힌 인물로, 중국에서 재판받았다면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지만 결국 한국에서 재판을 받은 사례다.
당시 중국 공안은 이씨의 범행 장소가 자국이어서 수사관할권이 있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었지만, 한국 정부와의 사법공조 강화 차원에서 신병을 한국에 넘기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올해 들어 급격히 냉각됐다 회복을 모색 중인 한중관계에 미칠 파장도 주목된다.
한국 정부는 이날 A씨에 대한 사형 집행에 유감을 표하며 사형 선고 후 중국 측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도적 측면에서 형 집행을 재고·연기해야 한다는 요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외교가에서는 사형 집행이 국가간 문제라기보다는 개별적 사안에 가까워 양국 외교관계에 줄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여론이 중국을 비판하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양국 외교당국은 여론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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