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횡령 '사각지대'…잇따른 사고에 시장악화 우려도

입력 2023-08-06 06:03  

부동산 PF, 횡령 '사각지대'…잇따른 사고에 시장악화 우려도
부동산 대출잔액 131조·연체율 2%대 급등
'금융사 임직원 횡령사고 방지법' 발의됐으나 심의 안돼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임수정 채새롬 오지은 기자 = 최근 경남은행에서 발생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횡령 사고는 횡령에 취약한 PF 대출 구조와 금융사의 내부 통제 미비를 여실히 드러냈다.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건설 업계 악재 등으로 PF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계속되는 PF 횡령 사고로 가뜩이나 어려운 시장 분위기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경남은행에서 또…부동산 PF, '횡령 사각지대'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BNK경남은행 횡령 사고를 계기로 횡령에 취약한 부동산 PF 구조와 금융사의 내부통제 미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부동산 PF는 계약마다 구조와 종류가 다양하고, 자금 관리도 여러 단계를 거친다. 해당 계약의 담당자가 아니면 자금 흐름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주식이나 채권, 일반 상품 등 전통 자산의 경우 자금 집행 부서와 결제 부서가 분리돼 있고, 제3의 기관(예탁원 등)에서 해당 거래가 실제로 이뤄진 것이 맞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그러나 부동산 PF, 신탁, 대체투자 등은 중소형사의 경우 업무상 편의 때문에 자금을 운용하는 주체와 관리하는 주체가 엄밀히 나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실시간으로 자금 거래에 대해 검증하는 제3 기관도 없다.
감사부서가 한 회사에서 담당하는 수백, 수천개의 PF 계약에 대해 확인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부통제가 상대적으로 미비한 회사에서 담당자가 직업윤리를 저버리기로 결심하면 쉽게 일탈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사고가 난 경남은행에서는 특히 내부통제 시스템 자체가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우리은행 직원의 거액 횡령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11월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통해 장기 근무자에 대한 인사 관리 기준을 강화하고 PF 대출 영업 업무와 자금 송금 업무를 분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경남은행에서 PF 대출 상환자금 562억원을 횡령한 직원 A씨는 최근까지도 직무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15년간 부동산 PF 업무를 계속해왔다.
금융감독원은 특정부서 장기 근무자에 대한 순환인사 원칙 배제, 고위험 업무에 대한 직무 미분리 등 기본적인 내부통제가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이번 사고도 대출 업무와 자금 송금 업무가 분리됐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이라며 "프론트 오피스부터 백오피스까지 한 부서에 몰아놨으니 개인이 맘을 먹으면 횡령이 가능하게 짜인 구조"라 말했다.
다른 금융사 PF 담당자는 "대형 금융사의 경우에는 별도의 신탁사에 자금 송금을 위탁하는 구조고, 사문서를 위조하지 않는 한 현장에서는 횡령이 쉽지 않다"면서도 "보통 여러 딜이 한 번에 진행되기 때문에 초기에는 감시가 느슨한 편이어서 횡령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고삐 풀린 부동산PF 대출 연체율 급등…추가 신뢰 훼손 우려
시장에서는 이번 사고로 가뜩이나 어려운 부동산 PF 시장 신뢰가 훼손될 것으로 우려한다.
이미 금융권의 대출 잔액은 131조원을 돌파하고 연체율도 2%를 넘어서 사업장 곳곳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131조6천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말의 130조3천억원에서 3개월 만에 1조3천억원이 늘었다.
연체율도 심각한 수준이다.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올해 3월 말 기준 2.01%로 지난해 12월 말의 1.19%보다 0.82%포인트(p) 올랐다.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2020년 말 0.55%, 2021년 말에는 0.37%에 불과했는데 올해 3월 말에는 2%를 넘긴 것이다.
이 중에서도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15.88%로 2020년 말 3.37%, 2021년 말 3.71%에 비해 10%p 넘게 급등했다.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사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각각 4.07%, 4.20%로 지난해 12월 말에 비해 각각 2.02%p와 1.99%p 증가했다.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금융권의 '뇌관'으로 떠오르자 금융당국은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최근 '철근 누락 아파트' 등 건설업계 악재와 횡령 사고로 PF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런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부동산 PF에 대한 심리가 훼손된다"며 "PF 전반에 대해 투자자들의 인식이 악화되고, 관련 자산 금리도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PF 대출이 부실화가 계속되면서 그간 은폐됐던 부실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 금융사 임직원 횡령사고 방지법 발의됐지만 방치
작년 우리은행에 이어 최근 경남은행까지 금융사의 대형 횡령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금융사 임직원의 횡령을 방지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 처리는 미뤄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이 올해 초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금융사의 임직원이 5천만원 이상을 횡령하거나 배임한 경우를 중대 금융사고로 규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중대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해당 금융사가 금융위원회에 금융사고의 발생 경과와 대책을 보고해야 한다. 보고하지 않거나 거짓을 보고한 경우에는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또 금융위원회는 해당 금융사고가 발생한 금융사의 대표이사 등 책임자에 대해 최대 6개월의 직무 정지를 요구할 수 있다.
해당 법안은 정무위 소위에 회부돼 있지만, 아직 심의는 되지 않았다.
은행연합회는 이에 대해 중대 금융사고 발생 시 일률적으로 직무정지 제재조치를 부과하는 것은 책임비례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으며, 제재조치의 부과 대상이 되는 중대 금융사고의 금액 기준인 5천만원은 지나치게 낮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중대 금융사고 책임자의 법적 의무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는 등 추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양정숙 의원실이 금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금융사 임직원의 횡령 사건은 경남은행을 포함해 11개사, 33건에 총 592억7천300만원이었다.
이는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으로 금융권 전체 횡령액이 1천10억원을 기록했던 지난해에 이어 가장 많은 액수였다.
srch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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