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본의 中 군현대화 지원 차단…대중 첨단기술유출 통제 '고삐'
동맹국 對中 조치 동참 압박에 반도체 장비 추가 수출 통제도 예고
일부 규제 수위 조절하며 상황 관리…中의 향후 맞대응 조치 주목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미국이 반도체 장비·반도체칩 수출 통제에 이어 9일(현지시간) 이들 분야를 포함한 첨단 기술에 대한 미국 자본의 중국 직접 투자도 제한하면서 국가 안보의 핵심인 첨단 기술을 둘러싼 미중간 갈등이 더 격화할 전망이다.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을 제재하고 갈륨 등 희귀광물 수출통제를 시행하면서 미국의 조치에 맞대응하는 상황에서 이른바 '돈줄'을 규제하는 초유의 대(對)중국 조치를 내놨다는 점에서다.
나아가 미국이 '유일한 전략적 경쟁자'로 꼽는 중국의 '기술·군사 굴기(堀起·일어섬)'를 차단하기 위해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라는 원칙에 입각해 안보 차원의 조치를 계속하면서 동맹국의 동참도 견인할 것이라는 점도 미중 관계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다만 '디커플링(탈동조화)' 대신 '디리스킹(탈위험화)'를 대중국 경제 관계의 키워드로 띄우고 있는 미국은 이번 조치 역시 중국 경제에 대한 대응 조치가 아니라 미국 안보 차원의 조치라는 점을 부각하고 일부 규제 수위도 조절하는 등 상황 관리를 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 대중 첨단기술 투자 첫 금지…中 군사 굴기 전방위 차단 = 미국이 이날 발표한 대중국 투자 규제 조치는 ▲ 반도체 및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 양자 정보 기술 ▲ 인공지능(AI) 시스템 등 3가지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이 분야에서 군용 제품 개발과 관련된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는 금지되며 이보다 낮은 수준의 기술이나 이중용도 제품 개발 등과 관련된 대중국 투자는 미국 정부에 대한 신고가 의무화된다.
지난해 10월 반도체 수출 통제가 미국의 기술이 중국군 현대화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라면, 이번 조치는 중국이 미국의 자본을 이용해서 미국을 안보적으로 위협하는 것을 막겠다는 차원이다.
미국이 첨단 기술에 대한 대중국 투자 금지 조치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거래 유형은 인수합병, 사모펀드, 벤처캐피탈 등을 통한 지분 인수, 합작 투자, 주식 전환이 가능한 특정 채무 금융 거래 등이다. 다만 재무부는 주식 시장을 통한 거래, 인덱스펀드, 뮤추얼펀드 등 간접 투자에 대해서는 규제를 면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투자 규제는 자본 유입에 따라 중국 기업이 얻는 다른 이득을 차단한다는 의미도 크다.
재무부는 보도 참고 자료에서 "미국의 투자에는 경영지원, 투자·인재 네트워크, 시장 접근 등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무형의 이익이 통상 수반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자본 보다는 이런 이익 차단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발표 직전 진행한 브리핑에서 "중국은 순자본 수출국이기 때문에 우리 돈이 필요하지 않다"면서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노하우이며 이런 노하우는 특정 유형의 투자와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 동맹국 동참 압박에 반도체 수출통제 추가 조치도 예고 = 바이든 정부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10월 처음 내놓은 포괄적인 반도체 장비 및 AI용 반도체칩 등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의 연장선이다.
지난해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국을 '가장 중대한 지정학적 도전'으로 규정한 미국은 미국의 첨단 기술이 중국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오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를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Small yard High fence)' 원칙으로 표현하면서 "경쟁자에 대한 신중한 맞춤형 표적(carefully tailored and targeted) 기술 수출 통제를 계속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오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기준을 이전보다 더 낮추는 추가 조치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미국 기업에 대한 조치만으로는 제재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데다가 중국에서 미국 기업의 빈자리를 외국 기업이 채울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이유로 동맹국에도 유사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압박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반도체 장비 핵심 국가인 일본과 네덜란드도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를 취하면서 미국과 보조를 맞춘 바 있다.
대중국 투자 규제와 관련해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미국 의회에서도 대중 투자 규제와 관련해 동맹국의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유럽연합, 영국, 독일 등이 유사한 조치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연장선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에도 동참 압박이 있을 수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조치는 미국 국민 대상이며 한국과 당장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면서 "우선적 협의 대상인 G7 차원에서도 합의가 안 됐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당장 요구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에 이어 의회의 조치도 주목된다.
앞서 미국 상원은 지난달 미국 투자자가 중국 첨단기술 기업의 지분을 획득할 때 정부 신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한 바 있다.
이 내용을 포함해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향후 미국 의회에서 대중 투자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는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 美 일부 수위 조절도…중국 대응 주목 = 바이든 정부는 이번 투자 제한 조치를 발표하면서 로우키 자세를 취했다.
이번 행정명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남서부 지역을 방문한 가운데 별도의 세레머니 없이 발표됐다.
나아가 대중국 투자 제한 조치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2021년부터 검토된 것으로 내부 논의 과정에서 '수위 조절'도 있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가령 생명공학, 청정에너지 등의 분야는 검토 과정에 빠졌으며 투자 금지 기준도 애초 콘셉트보다 완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발표된 조치 역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서 내년께 시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정부는 그동안 발표 시점을 수차례 연기했고, 발표에 앞서 지난달 방중한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중국 측에 대중국 투자 규제 방향에 관해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이것이 경제적인 조치가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의 조치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번 행정명령은 '투자 개방' 원칙을 유지하면서 좁은 방식의 표적 설정을 통해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의 이번 조치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 상원이 대중국 투자 신고 조항이 포함된 NDAA를 통과시켰을 때 "시장 경제 원칙에 어긋난다", "산업계와 민간 부문의 정상적인 무역·투자 활동에 인위적으로 제한을 걸고 있다"면서 단호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이와 관련, 이번 조치에 대해 "우리는 진행 과정을 면밀히 지켜볼 것이며 우리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취할 맞대응 조치가 연초 정찰풍선 사태 이후에 대화를 일부 복원한 미중 관계의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맥락에서 이달 말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의 방중, 왕이 외교부 부장의 연내 방미 가능성, 11월 샌프란시스코 아태경제협력체(APEC) 계기 미중 정상회담 등 중요 외교 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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