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하락에 소비 줄고 부동산 침체…재고 넘친 기업은 가격 할인 등 악순환
중국 경기부양책 발표했지만 부족 평가…위안화 약세·부채가 걸림돌
'인플레' 서방엔 단기 호재…올해 남은 기간 상황 개선 전망도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싸우는 가운데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 진입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7월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3%, 4.4% 하락했다.
두 지수 모두 나란히 뒷걸음질한 것은 2020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중국은 이제 수치상으로는 초과 공급 속에 상품 가격이 지속해서 하락하는 경제활동 침체기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 세계는 인플레이션과 싸우는데 중국만 디플레이션 발생한 이유
코로나19 팬데믹이 막을 내리고 수요가 폭발하자 미국 등 주요 경제권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올해 초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전환한 중국도 같은 상황을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중국 실물 경제는 반대로 디플레이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비 증가율은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고가 제품 구매를 꺼렸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10일(현지시간) 여러 이유를 들며 심층 진단했다.
우선 계속된 부동산 침체로 경기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흔들렸고, 중국 당국의 전력 분야 통제 등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도 내려갔다는 점이 디플레이션의 주요 이유로 꼽혔다.
자동차 기업 간 가격 전쟁은 디플레이션에 더욱 부담을 줬고, 다른 일반 기업도 팬데믹 기간에 쌓인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가격 할인 대열에 동참했다.
다만, 여행, 식당 등 서비스에 대한 지출은 줄지 않았고 관련 분야의 가격도 상승했다.
◇ 소비자·기업에도 부담…투자도 곤란
상품 가격이 내려가면 소비자에게 유리한 게 아닐까.
이에 대해 블룸버그 통신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가격이 하락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상품 구매에 돈을 쓰기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상품의 가격이 두루 오랫동안 하락하게 되면 사람들은 가격이 더 내려갈 것이라고 보고 가전제품 등 고가 상품 구매를 미루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 활동을 더욱 압박하고 기업에는 추가 가격 인하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는 소비자에게 소득이 줄고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상황은 소비를 더 줄이는 식으로 급락할 수 있다고 짚었다.
기업에도 악영향이 미친다.
낮은 가격은 대개 매출과 이익 감소로 연결되며 기업의 투자와 고용도 억제하게 된다.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서 더 심각한 디플레이션이 유발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수십년간 장기 침체를 겪었던 일본을 대표적인 예로 소개했다.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도입했지만, 경기 상황을 거의 개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기에는 일반적으로 채권이 투자자 보호에 유리한데 중국의 상황은 이마저도 여의찮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즈노 은행의 수석 아시아 외환 전략가인 컨처웅은 "중국 국채 수익률이 주요 시장과 비교하면 너무 낮아서 외국 트레이더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당국이 가진 대응 카드…위안화 약세·부채가 걸림돌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은 어떤 대응 카드를 내세울 수 있을까.
중국은 2009년, 2015년, 2020년에도 비슷한 경기 침체 상황에서 강력한 통화 완화 정책과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일단 이번에도 중국인민은행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거나 은행 보유 현금 규모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 당국에는 위안화 약세와 지방 정부 등의 높은 부채가 이런 정책을 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중국 정부가 발표한 대책의 경우 수위가 매우 미온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달 31일 '소비 회복 및 확대에 관한 20개 조치'를 발표했다.
조치에는 국영 기업과 대기업 등 일부에서만 제대로 시행하는 유급 휴가제 전면 시행, 여가 문화 및 관광 콘텐츠 활성화 방안 등이 담겼다.
지난달 18일에는 가계 소비 진작을 위한 11개 정책이 공개됐고, 중국 최고 지도부인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지난달 24일 자동차·전자제품·가구 등 상품과 체육·레저·문화·여행 등 분야의 서비스 소비 확대를 포함한 내수 부진 타개책을 중국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주민 대상 현금 지원, 기업 세금 관련 파격적 혜택 등 핵심 지원 요소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선진국엔 일단 호재?…조만간 상황 개선될까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의 디플레이션 상황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선진국에 일부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제조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하면 인플레이션과 사투를 벌이는 미국과 유럽 등의 중앙은행에 약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과 유럽이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왔고, 선진국 소비 지출에서 중국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에서 관련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디플레이션의 지속 시기와 관련해서는 일부 경제학자들은 올해 남은 기간에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전망은 PPI의 경우 7월 지수가 4.4%로 낮은 상태이기는 했지만 전월의 -5.4%보다는 낙폭을 줄였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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