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업장 챙기고 글로벌 네트워크 다져…'민간 외교관' 역할도
미래 투자 강화…경영환경 급변에 과제 산적·사법 리스크 여전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작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지 오는 15일로 1년이 된다.
복권으로 '경영 족쇄'가 풀린 이 회장은 글로벌 행보를 가속하며 삼성의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복권 후 첫 현장 행보로 기흥 차세대 반도체 R&D(연구개발) 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데 이어 복권 70여일만인 작년 10월 27일 회장직에 오르며 '뉴삼성'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회장은 복권 발표 당시 낸 입장문에서 "더욱 열심히 뛰어서 기업인의 책무와 소임을 다하겠다"며 "지속적인 투자와 청년 일자리 창출로 경제에 힘을 보태고,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정부의 배려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 회장은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21년 8월 가석방됐으나, 이후 형기가 종료된 뒤에도 5년 동안의 취업 제한 규정 때문에 경영 활동에 제약받다가 작년 8월 복권됐다.
이 회장은 복권 이후 특히 글로벌 네트워크를 재가동하며 복합 위기 타개책을 모색하는 한편 '민간 외교관' 역할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언론 등에 공개되거나 알려진 해외 방문 국가만 10개국이 넘는다.
복권 후 첫 해외 출장으로 지난해 9월 중남미와 영국을 다녀온 데 이어 회장 취임 후인 지난해 12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있는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현장과 삼성전자 베트남 R&D 센터 기공식을 챙겼다.
올해 들어서는 연초 윤석열 대통령의 UAE·스위스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것을 비롯해 3월 일본 방문, 4월 미국 국빈 방문, 6월 프랑스·베트남 순방에도 다른 총수들과 동행해 다양한 글로벌 투자 협력을 끌어내는 데 일조했다.
특히 방미 경제사절단 일정을 마친 뒤에는 미국 동부 바이오 클러스터와 서부 실리콘밸리 ICT 클러스터를 횡단하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주요 글로벌 기업 CEO 20여명을 두루 만났다.
최근에는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해외 출장 일정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나 사업 논의 등을 위해 수시로 해외를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글로벌 행보에 속도를 내는 것은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위기 속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주력인 반도체 업황 악화로 올해 상반기에만 반도체 사업에서 9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하반기에는 감산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수요 회복이 여전히 부진해 당분간 'V자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모습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초격차' 기술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에 집중하며 미래 준비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은 반도체에 이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바이오 분야 육성을 위해 향후 10년간 바이오 사업에 7조5천억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3월에는 2042년까지 향후 20년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총 300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직접 고용 3만명을 포함해 고용 유발만 160만명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등 주요 계열사는 향후 10년간 충청·영남·호남 등에 위치한 주요 사업장을 중심으로 제조업 핵심 분야에 총 60조1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역 산업 생태계를 육성해 각 지역이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는 오는 2026년까지 충남 아산에 4조1천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초로 8.6세대 IT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생산에 나선다고 밝혔다. '60조원 지역 투자' 약속의 첫 이행이다.
이밖에 삼성전자는 현대차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처음 손을 잡는 등 전장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개발에도 역량을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직속으로 '세상에 없는' 기술과 제품 발굴을 위한 미래기술사무국을 신설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미중 갈등 심화, 인공지능(AI) 확산 등으로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만큼 이 회장 앞에 놓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 기대를 모았던 대형 인수·합병(M&A)도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이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 합병과 이를 위한 회계 부정을 지시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로 2020년 9월 기소돼 햇수로 4년째 재판을 받고 있다.
매주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느라 장기간 출장이나 일정에도 일부 제약이 있다. 작년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방한 시에도 재판부에 불출석 의견서를 내고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동에 참석했다.
재판부가 최근 다른 사건 공판에서 "삼성 사건을 집중 심리해 11월께 거의 끝날 것 같다"고 언급한 만큼 1심 결과가 이르면 11월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연내 사법 리스크가 재부각될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등기 임원에 오를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법 리스크가 재부각될 경우 등기 임원 복귀 시점은 더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도 '책임 경영'을 하고 있는 데다 특히나 부당 합병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등기 임원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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