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초원 밑 CO₂저장고'…넷제로 교두보 호주 CCS 실증센터

입력 2023-08-16 10:00  

[르포] '초원 밑 CO₂저장고'…넷제로 교두보 호주 CCS 실증센터
오트웨이 실증센터, 땅속에 CO₂9만5천t 저장…세계 최대규모 실증
탄소 움직임 모니터링·CCS 기술 연구개발…글로벌 기업들도 참여
SK E&S, 바로사 가스전 개발·고갈가스전 동시 확보…CCS 사업 선도



(오트웨이[호주]=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소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드넓은 초원.
지난 15일(현지시간)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 오트웨이 국제 탄소 포집·저장(CSS) 실증센터에 도착하자 그야말로 목가적 풍경이 펼쳐졌다.
한참을 달려도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들판엔 풀을 뜯는 소 떼와 양 떼뿐, 인기척조차 찾기 어려웠다.
얼핏 보기엔 영락없는 호주의 시골 마을 같지만, 이 들판 아래로는 세계 최대인 약 9만5천t 규모 이산화탄소 저장고가 숨어 있다.
호주 국책 연구기관인 CO2CRC가 운영하는 이곳 실증센터에서는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 CCS에 대한 실증과 연구가 한창이다.



◇ 지하 2㎞ 고갈 가스전에 탄소 주입·모니터링…저장 방안 연구
CCS는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액화·압축·수송 과정을 거쳐 육상이나 해양 지중(地中)에 저장하는 기술을 말한다.
오트웨이 실증센터는 CCS를 활용한 글로벌 탄소중립의 전초기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호주뿐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기관의 다국적 연구원들이 이곳에 모여 CCS 기술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참여 기관 가운데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2008년부터 CO2CRC와 함께 이산화탄소 모니터링과 지중 저장 기술 연구에 참여해왔다.
CCS 기술의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가 잘 저장됐는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는지 움직임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모니터링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안전하게 이산화탄소를 주입할 수 있을지, 안정성과 효율성 개선을 위한 연구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오트웨이는 CCS 관련 연구·실증을 위한 최적의 입지를 갖췄다.
실증센터에는 3개의 이산화탄소 주입정과 4개의 관측정이 1.5∼2㎞ 깊이 이산화탄소 저장층과 연결돼 있는데, 지면에서 2㎞ 아래에는 고갈된 가스전이, 1.5㎞ 아래에는 대염수층이 존재한다.
대염수층이란 해수보다 더 높은 염분농도로 채워진 다공질의 암석을 말한다.
그 위는 두껍고 단단한 암석층으로 덮여 있어 이산화탄소 유출 가능성도 거의 없다. 덮개암이 코르크 마개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빈 가스전에 투입된 이산화탄소는 내부에서 물과 만나 섞이고 밀도 차이에 의해 바닥으로 가라앉게 되며, 시간이 지나면서 탄산칼슘 결정으로 굳어진다.
C02CRC의 폴 배러클러프(Paul Barraclough) 최고운영책임자는 "실증센터에서는 지난 15년 동안 9만5천t의 이산화탄소를 고갈 가스전과 대염수층에 주입했다"며 "이산화탄소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하면서 안전하게 저장돼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 "기후위기 대응 위한 현실적 대안"…글로벌 기업도 속속 투자
CCS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기후 위기가 인류 공통의 과제로 떠오르면서부터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여야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는 더디고, 화석연료 사용을 일거에 중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CCS는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증센터에서 만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용찬 박사는 "현재가 화석 연료 기반 사회라면 미래는 신재생·수소 경제 사회가 될 것"이라며 "현재와 미래를 잇는 '브릿지 테크놀로지'가 CCS"라고 설명했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 글로벌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CCS 기술이 없다면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CCS 기술 기여도를 총 탄소 감축량의 18% 수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단일 기술로는 탄소 감축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셈이다.
특히 천연가스 수출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호주 입장에서는 CCS 프로젝트에 나라의 미래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주 정부의 정책적 지원 아래 오트웨이 실증센터에 세계 각국의 투자와 참여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 CO2CRC는 SK E&S를 비롯해 한국 K-CCUS추진단, 한국무역보험공사와 CCS 사업 협력 관련 다자 간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 한국도 동해가스전 활용 실증 추진…"저장소 확보 시급"
한국도 최근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정부안을 공개하고 2030년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안에는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로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치를 기존의 1천30만t에서 1천120만t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한국 정부는 현재 동해가스전을 활용한 CCS 실증을 추진 중이다.
2030년까지 연간 120만t의 이산화탄소를 동해가스전 지중에 저장하는 것이 목표다.
또 한국은 2017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탄소 저장 기술 해상 실증에 성공하는 등 상당 수준 기술력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지리적 여건상 국내에 대규모 저장소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SK E&S가 호주 산토스 등과 함께 이산화탄소 지중 저장소 개발을 추진 중이다.
호주 북서부 해상의 바로사 가스전에서 천연가스가 생산되면 생산과정에서 포집된 이산화탄소는 해저 파이프라인을 타고 인근의 고갈 가스전인 바유운단으로 운송돼 저장되는 구조다.
이 밖에도 SK E&S는 지난해 호주에서 진행된 해상 이산화탄소 저장소 탐사권 입찰에서 산토스, 셰브론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과 함께 광구 운영권을 획득한 바 있다.
전날 멜버른에서 취재진과 만난 마틴 퍼거슨 CO2CRC 회장은 "한·호주 양국 간 에너지 협력의 영역이 에너지 안보뿐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으로까지 확대됐다"며 "호주는 상업적으로 운영 가능한 잠재 이산화탄소 저장소인 해상 고갈 유전·가스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현재 호주 의회에서는 해외에서 감축한 이산화탄소를 호주로 수입해 저장할 수 있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회원국 및 회원사와 함께 한국의 이산화탄소를 호주 고갈 유전·가스전에 저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최근 호주에서는 국가 간 이산화탄소 이송을 위한 국제협약 비준을 위한 법안이 하원을 거쳐 상원 통과를 앞두고 있다.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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