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전기차 판매 양호…배터리, 대미 투자 늘려
핵심광물 탈중국 과제…'IRA 우회로' 한중 합작사 불확실성도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임기창 이슬기 기자 = 미국이 자국의 제조업 강화를 위해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16일로 1년이 됐지만 당초 우려와 달리 국내 자동차업계의 전기차 판매가 양호한 수준을 보이는 등 타격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배터리 기업을 중심으로 IRA 시행에 따른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됐고,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 수출도 크게 늘었다.
다만 핵심 광물의 탈중국과 공급망 다변화는 여전히 숙제다. 핵심 광물 조달을 금지하는 해외우려단체(FEOC)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아직 확정되지 않는 등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다.
◇ 상업용 전기차도 보조금 수혜…현대차·기아 북미 판매량 양호
중국, 유럽과 더불어 세계 3대 전기차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에 진출한 자동차 업계에는 '북미 최종 조립'을 전기차 보조금 지급의 전제조건으로 명시한 IRA 조항이 큰 부담이었다.
그간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미국에서 판매한 전기차는 전량 국내 공장에서 생산돼 수출하는 물량이었다. IRA의 전기차 보조금 조항을 적용하면 한국산 전기차는 배터리 핵심 광물 요건 등과 무관하게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원천 배제되는 상황이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립하기로 한 전기차 전용공장은 일러도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양산이 시작되는 터라 대당 최대 7천500달러(약 1천만원)에 달하는 전기차 보조금 혜택에서 배제되면 가격경쟁에서 열위에 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내 업계는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 중인 현대차그룹이 보조금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북미 최종 조립'의 정의를 완화하거나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리스 등 상업용 전기차에는 해당 조항 적용을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했다.
정부와 업계의 전방위적 노력으로 미국 정부는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규정과 관련한 추가 지침에서 상업용 전기차를 보조금 수혜 대상에 포함하기로 해 국내 업계로서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종전 2∼3%대에 그쳤던 상업용 전기차 리스 판매 비중을 30% 수준까지 늘렸고, 기아도 비슷한 수준으로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IRA 시행 이후에도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1∼6월) 양사의 미국 시장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1.4% 증가한 3만8천457대로 반기 기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점유율로는 테슬라에 이어 2위다. 7월에도 전년 대비 109.1% 늘어난 1만385대로 처음 월 1만대를 돌파하며 역대 월간 최다를 기록했다.
◇ 배터리 업계, 세액공제 수혜 가시화…대미 투자 ↑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상반기에 IRA 세액공제 예상 금액 2천112억원을 실적에 반영했다. SK온도 AMPC 효과 1천670억원을 2분기 실적에 처음 반영했다.
아직 북미 지역에 가동 중인 공장이 없는 삼성SDI의 경우 2025년을 기점으로 수혜가 가시화될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의 북미 생산 능력 확대에 따라 AMPC 수혜액은 더 커질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LG에너지솔루션이 받게 될 AMPC 혜택이 2조4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IRA는 최종적으로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형태로 최대 7천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50% 이상 사용 시,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의 40% 이상 사용 시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미국 생산 거점 확보에 적극 나서는 등 대미 투자를 늘리고 있다. 완성차 업계와의 합작법인 설립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나란히 현대차그룹과 손잡고 2025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각각 전기차 배터리셀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지역에만 총 8개의 공장을 운영 또는 건설 중이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와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인디애나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는 데 이어 GM과도 손잡고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연산 3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SK온의 경우 2025년 가동을 목표로 포드와 만든 블루오벌SK 공장을 포함해 북미 공장이 모두 가동할 경우 생산 규모는 연간 185GWh에 달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이차전지 소재인 양극재의 대미 수출도 크게 늘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미국으로의 양극재 수출액은 18억3천600만달러로, 지난해(6억6천100만달러)보다 177.8% 뛰었다.
◇ 핵심 광물 탈중국 과제…불확실성 여전
배터리 업계가 당장은 IRA 시행으로 수혜를 본다고 하지만, 핵심 광물의 탈중국은 여전히 숙제다.
최근 중국 기업들은 IRA 우회로로 국내 배터리 업계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중국 전구체 업체 CNGR(중웨이·中偉)과 함께 경북 포항에 니켈과 전구체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고, LG화학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손잡고 2028년까지 1조2천억원을 투자해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전구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SK온도 중국의 GEM(거린메이)과 전구체 생산을 위해 손을 잡았다.
전구체는 IRA 지침상 북미에서의 제조·조립 필요성이 큰 배터리 '부품'이 아닌 핵심 광물에 준하는 '구성 소재'로 규정돼 미국과 FTA를 맺은 한국에서 생산해도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중국 기업은 한국을 우회로로 삼아 미국 진출 기회를 노리고, 한국은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전구체의 국내 생산 능력을 높일 수 있어 '윈윈'하는 셈이다.
다만 한중 합작사에 대한 미국 규제 가능성은 부담이다.
박태성 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FEOC가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될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업계와 협회, 정책 당국 모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며 "중국과 공급망 구축이 불가피하다면 우선 협력을 진행하고 추후 구체화되는 FEOC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리스크 관리를 하는 등 실용적이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IRA의 지속가능성에 의구심이 든다"며 "변동 리스크를 감안해 본질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자체적 수익성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퓨처엠 등 배터리소재 공급망에서 국내를 최대 거점으로 둔 기업의 수혜가 예상된다.
포스코퓨처엠은 2025년 전남 광양 율촌 제1산업단지 내 연산 5만2천500t 규모의 하이니켈 NCA 양극재 공장을 준공하는 등 국내 양극재 생산 능력을 꾸준히 늘려 오는 2030년까지 100만t 생산 능력을 구축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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