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단둥∼베이징 10시간 여정에 25시간 들여
"베이징 북한대사관 기숙사 포화 상태…언론 예상 보도에 계획 수정 가능성도"
(단둥=연합뉴스) 박종국 정성조 특파원 = 3년 7개월 만에 닫힌 북한·중국 국경을 열고 중국 단둥에 도착한 북한 태권도 선수단이 베이징으로 가면서 5시간이면 되는 고속철도를 놔두고 14시간 넘게 소요되는 야간 침대열차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6일 오전 11시 20분께(이하 현지시간) 북중 접경지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에 버스를 타고 온 북한 선수단 60∼70명은 당일 오후 6시 18분 단둥역을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타고 17일 오전 8시 40분께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단둥역에서 1천132㎞ 떨어진 베이징역으로 가는 열차편은 통상적으로 하루 세 번 있다. 오전 7시 9분에 출발해 베이징역에 낮 12시 20분에 도착하는 고속철도, 오후 2시 8분∼오후 7시 11분 고속철도, 오후 6시 18분 단둥역을 떠나 다음 날 오전 8시 40분 베이징역에 도달하는 야간열차다.
좌석 등급별로 411∼1천284위안(약 7만6천∼23만8천원)인 고속철도편은 단둥에서 베이징까지 5시간가량 걸리지만, 완행인 야간열차는 밤을 꼬박 새우는 일정이어서 객차 안에서 잠을 청해야 한다. 야간열차는 입석·좌석, 딱딱한 침대, 푹신한 침대 등으로 등급이 나뉘고 가격대는 141∼381위안(약 2만6천∼7만원)이다.
당초 대북 소식통들 사이에선 북한 선수단이 고속철도편으로 베이징에 가서 주중 북한대사관 기숙사에서 하루 정도 묵은 뒤 국제태권도연맹(ITF)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행 비행기를 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단둥에 도착한 시점이 고속철도 출발 시간인 오후 2시 8분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북한 선수단은 오후 6시 18분에 출발하는 야간열차를 선택했다. 압록강철교 초입의 단둥 해관(세관)에서 입국 절차를 마친 뒤로도 약 5시간을 흘려보낸 것이다.
평양에서 신의주까지는 기차로 5시간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들 선수단은 전날부터 열차 안에서만 20시간 정도를, 단둥 체류 시간까지 더하면 약 25시간을 들여 이날 오전 베이징에 당도한 셈이 된다.
소식통들은 북한의 이런 선택이 베이징에 있는 북한대사관의 사정과 관련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대사관 안에는 중국을 일시 방문하거나 해외를 오가는 북한인들이 잠시 머무는 용도로 4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시설이 있는데, 코로나19 발생 이후 귀국하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포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귀국하지 못한 유학생 수백명과 중국에서 범법 행위를 하다 북한 측 보안요원에 적발된 음식점 관계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당국은 이들을 귀국시킬 계획이지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북한대사관 기숙사가 60∼70명 규모의 새로운 손님을 받을 공간이 여의찮아 선수단을 야간열차에서 재운 뒤 곧장 항공편으로 카자흐스탄에 보내려 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다.
북한이 당초 계획을 갑자기 수정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소식통도 있다. 한국 언론이나 외신이 북한의 선수단 이동에 앞서 예상 동선과 일정을 보도하자 고속철도 이동 계획을 야간열차로 틀어버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북한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2020년 8월 중단했던 북중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하려다 일본 매체들이 예상 기사를 쓰자 몇 차례 연기했고, 작년 1월에야 운행에 나선 바 있다"며 "외부 언론이 보도한 바대로 실행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이달 19∼26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세계선수권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달 초부터 한국과 일본 등 매체들을 통해 나온 바 있다.
xi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