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수출 업체에 '외화→루블화' 전환 의무화…외화 배당금도 금지 추진
WSJ "러시아 경제 한계 도달"…공급 부족에 '동맥 경화' 오나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루블화 폭락을 떠받치려 역내 외화 흐름을 묶어두는 것을 골자로 한 자본통제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16일(현지시간)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이날 정책 담당자들과 회의를 열어 자본통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난해 2월부터 이어져온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싸고 크렘린궁의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로 비칠 수 있다.
이번 논의는 지난 14일 루블화 환율이 달러당 102루블을 찍으면서 그간 환율 시장에서 심리적 마지노 선으로 통했던 달러당 100루블을 넘어선 가운데 나온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처럼 루블화 가치가 곤두박질치자 전날 기준금리를 재차 인상해 12%까지 끌어올렸지만, 환율은 여전히 달러당 98달러 근처를 맴돌며 진정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러시아 재무부가 제안한 자본 통제 방안의 골자는 외화의 역외 흐름을 묶고 동시에 루블화 수요를 떠받치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번 방안에서는 주요 수출 업체로 하여금 90일 이내 외화 매출의 최대 80%를 루블화로 전환하도록 강제한다.
이렇게 되면 수출 업체는 손에 들고 있던 외화를 루블화로 바꿔야 해 루블화 수요를 끌어올리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이를 거부하는 업체에는 정부 보조금이 차단된다.
이번 방안에는 또한 외화 배당금 지급 금지, 수입 보조금 백지화, 화폐 스와프 제한, 수출 업체의 외화 역외 유출 축소 등도 포함됐다.
앞서 블룸버그 통신도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움직임을 전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4일 러시아 정부와 수출 업체 회의에서 이같은 방안이 논의됐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했으며, 이번 주 후반에 추가 회의가 열린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앞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서방 제재 여파로 루블화가 달러당 150루블까지 떨어지자 이번과 비슷한 자본 통제를 일시적으로 도입했었다.
그러다 루블화 가치가 되살아나기 시작하자 지난해 5월 자본 통제를 조금씩 풀었다.
러시아는 전쟁이 1년반 가까이 장기화하는 와중에도 경제 상황이 굳건하다고 주장하는 지표를 발표해왔지만 실제로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 진단했다.
특히 이번주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대폭 끌어올린 것은 크렘린궁 또한 러시아 경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현실을 직면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전시에 맞춰 경제에 돈을 쏟아붓는 확장 정책을 펴왔고, 이는 수요 증가로 이어지면서 지난해 경기 회복을 지탱했다.
하지만 문제는 공급 부족에 있었다는 게 WSJ 진단이다.
전시 체제에서 서방 제재에 따른 경제 고립과 노동력 감소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주 루블화가 개전 초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러시아 전시 경제의 불균형이 재차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지난 14일 루블화가 달러당 102루블을 찍으면서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으로 100루블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해 2월 개전 이전까지 달러당 75루블 수준이던 루블화는 전쟁 후 서방의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지난해 3월 한때 달러당 120루블을 넘어설 정도로 가치가 폭락했다.
이후 환전 금지, 외국인 주식 매도 금지, 에너지 기업의 루블화 보유 의무화 등 정부의 개입으로 이후 달러당 50루블 선까지 가치를 회복하기도 했다.
그러다 군비 지출 증가, 서방의 러시아산 유가 상한제 등으로 올해 들어 루블화 가치는 30% 가까이 급락했다.
러시아에서는 루블화 가치 하락이 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최근 3개월간 물가 상승률이 7.6%에 달해 정부가 제시한 목표인 4%를 크게 넘어섰다.
경제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주 요동친 루블화 가치가 단순히 러시아 재정 위기의 서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딱딱하게 굳은'(sclerotic) 경제 전망을 예고한다고 분석했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러시아 경제 분석가인 재니스 클루지는 "루블화 가치 폭락은 공공 지출을 쏟아냈던 경기 부양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 규모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으며, 특히 군수 제조공장은 주문 물량을 맞추려 연쇄 교대 근무로 가동 중이라고 WSJ은 전했다.
금속 제품, 시각 장치, 특수 의복 등 군수 물자에서는 통계 지표가 호황을 나타냈으나 비군수 항목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자동차 생산이 전년 대비 10% 이상 쪼그라든 것을 포함해 기계, 장비 부문이 서방의 부품 차단으로 직격타를 맞으면서 러시아 경제는 에너지와 금속을 포함한 천연 자원에 의존도를 높여가게 됐다.
이에 대응해 러시아는 서방 공급망에서 벗어나 자급자족 역량을 키우려 하지만 현재로서는 엇갈린 성적표를 쥐게 됐다고 WSJ은 분석했다.
러시아 기업 중 65% 정도가 수입 장비에 의존하는 실정이기도 하다.
뱅크오브핀란드의 한 신흥경제 전문가는 "신규 부문의 용량을 키우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면서 "설비, 숙련된 기술 인력 등 모든 게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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