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이곳에서 행해진 부당한 일은 역사일 뿐 아니라 당장 벨라루스나 러시아, 북한, 중국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학생들에게 이런 부당한 일이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헬게 하이데마이어 호헨쇤하우젠 기념관장)
17일(현지시간) 오전 독일 베를린 외곽의 호엔쇤하우젠 기념관. 1951년부터 1990년까지 구동독 국가안보부 슈타지가 반체제인사 등 정치범들을 가두고 취조하던 구치소였던 이곳은 한해 40만명이 넘게 방문하는 교육장소로 탈바꿈했다.
구치소였을 당시 이 일대 전체는 군사제한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됐다. 출입통제구역 한가운데 위치했던 옛 구치소는 4m가 넘는 담과 그 위 5중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곳에는 1961년 베를린 장벽 건설 이후 동독에서 탈출하다가 실패한 이들도 대부분 수감됐었다.
커다란 창살로 된 정문을 거쳐 구치소 부지로 들어가니 곳곳에 방문객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독일 전국과 인접 국가 학생 20만명을 비롯해 이곳을 방문하는 40만명은 한 때 직접 슈타지 구치소 생활을 경험했던 역사의 산증인들의 안내를 받아 이곳에서 일어난 부당한 일을 생생하게 보고 듣고 기억하게 된다.
구치소에 들어오는 정치범들은 서로 분리된 채 이송 차를 타고 들어와 감방으로 이동했다.
1950년대 사용됐던 지하감옥에서는 바닥에 물이 고여 장티푸스, 결핵, 수인성 전염병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이곳에서 수감자들은 폭행 등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 압박에 동독 정부는 수감자들을 1961년 지상 신축감옥으로 이전했다. 이곳에서는 폭행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심리적 고문이 가해졌다.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밤낮으로 20분마다 감방 내부를 감시하고, 특정한 자세를 취하도록 강요하는 식이었다.
이곳에서 방문자들은 안내하는 페터 코이프(64)씨는 1981년 헝가리를 통해 동독에서 탈출을 감행했다가 붙잡혀 슈타지 구치소에서 3개월 조사를 받은 뒤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산증인이다.
그는 "아무도 이곳이 어딘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감방에 머물 때는 누워서 천장을 보고 이불을 덮은 뒤 두 손을 이불 밖으로 내놓은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20분마다 한 번씩 간수들이 불을 켜고 자세를 확인했고, 자세를 유지하지 않으면 지적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서독의 친척들이 변호사를 통해 프라이카우프(정치범 석방거래) 요청을 해 9개월간 복역 끝에 서독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프라이카우프는 1963~1989년 서독과 동독 정치범 3만1천755명을 석방해 서독으로 이주하는 대가로 서독이 동독에 22억 마르크 상당의 현물을 지원하는 사례를 말한다.
헬게 하이데마이어 호헨쇤하우젠 기념관장은 "공산주의 독재하에서 일어난 부당한 일을 직접 보고 피부로 느끼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된다"면서 "구동독 슈타지의 구치소는 열악했지만, 북한이나 중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침해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는 이제 역사가 됐지만, 북한과 중국에서는 인권침해가 현실"이라며 "이 같은 인권 침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법치주의 국가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슈타지 구치소를 둘러보고 하이데마이어 관장과 간담회를 한 김홍균 주독대사는 "현재 북한에서 운영되고 있는 정치범 수용소는 다섯 군데로, 이곳에 8만~12만명의 정치범이 수용돼 고문, 학대,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고,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인간이 버텨낼 수 없는 열악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적으로 이슈화해 북한에 압박을 가하려 하고 있다"면서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인권과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함께 나서는 게 중요하다. 관련 문제 제기에 힘을 실어달라"고 당부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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